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물론 2007년에는 공식적으로 유럽의 세계유산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공표될 만큼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고 있는 곳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는 방어에 유리한 고지대에 자리를 잡았는데 높다는 뜻의 ‘아크로’와 도시국가를 뜻하는 ‘폴리스’가 합쳐져 아크로폴리스라 불렸다. 각 도시에 아크로폴리스가 있었지만 현재에는 아크로폴리스라 하면 일반적으로 아테네의 것을 뜻한다.
아테네 어디에서나 바라볼 수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몇천 년전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아테네의 상징이다. 그리스 건축물의 걸작이라 불리는 파르테논 신전, 에렉테이온과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등 주요 사적이 리카비토스 언덕에 속해있다. 아크로폴리스와 그리스의 역사를 모르더라도 이곳에 오르면, 2009년 개봉한 영화 ‘나의 로맨틱 가이드’에서 주인공 조지아가 좋아한다는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가 그냥 단순한 바람소리가 아닌 것은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하늘에 떠있다는 뜻의 그리스어 메테오로스에서 유래된 메테오라는 수직으로 솟아오른 기암괴석들과 그 위에 건설된 수도원들이 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기도와 명상에 정진하기 위해 수도사들이 기암괴석의 동굴이나 갈라진 바위틈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또한, 14세기 수도원이 많이 모여 있던 그리스도교의 성산 아토스산이 슬라브족에게 점령되면서 많은 수도사들이 이들을 피해 메테오라에 자리를 잡으면서 기암괴석 위에 수도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수도사들만 생활하던 이곳이 일반에 공개되면서 여자들도 방문할 수 있게 되었지만, 치마를 입거나 화려한 옷은 입장이 제한될 수도 있다. 전쟁의 시대에 아토스산을 떠나와 이곳에 정착한 수도사들이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들 때문에 다시 아토스산의 수도원으로 옮기고 있는 반대의 상황이 생겼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성한 파르나소스산 기슭에 있는 델피는 델포이라는 고대 그리스어로도 자주 불리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피를 지구의 배꼽(중심)으로 믿으며 세워둔 돌 ‘옴파로스’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신탁의 장소인 ‘아폴론 신전’이 유명하며, 이 일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델피의 아폴론 신탁과 관련된 소크라테스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리스의 현인 소크라테스의 지인이 델피에서 신탁을 청했는데, 그리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소크라테스라는 신탁이 나왔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그 이유에 대해 궁리를 하였다. 그 결과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알고 있다는 ‘무지의 지’를 깨닫고 있기 때문에 가장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후 나온 말이 “너 자신을 알라”였다고 한다.
[하이트진로웹진 11월호] 천 개의 색깔, 어메이징(Amazing) 인디아! (0) | 2011.11.04 |
---|---|
[하이트진로웹진 10월호] 세계적인 예술과 문화의 나라, 봉 쥬르(Bonjour)! 프랑스 (0) | 2011.10.11 |
[하이트진로웹진 9월호] 삶은 축제이며 이 땅은 그 무대다, 브라질 Brasil (0) | 2011.09.14 |
[하이트진로웹진 8월호] 거대한 자연을 품고 있는 나라, 미국 /조은정 (0) | 2011.08.05 |
[하이트진로웹진 7월호] 별처럼 빛나는 유적을 딛고 살다, 멕시코 /김준현,전혜진 (0) | 2011.07.06 |
12이란 숫자를 영어로는 ‘dozen’이라 하고 흔히 ‘다스’라고 우리는 말한다. 예를 들면 연필 한 다스하면 연필 열 두 자루를 뜻한다.
이처럼 ‘다스’는 그 자체로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서양인들이 13을 불길한 숫자로 여겼던 까닭도 실은 한 묶음을 넘어서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세상의 일도 다스 단위로 변화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13년이 되면 새로운 단계, 즉 뉴 라운드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열 두 달이 지나면 새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기본적인 변화는 바로 이 12년을 한 묶음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삶도 역시 12년을 하나의 묶음으로 한다.
예를 들면, 어떤 특별한 해, 가령 결혼한 해가 1997년이라 한다면 2009년으로서 12년이 지난해가 되는 것이니, 결혼 생활도 새로운 라운드로 접어든 셈이라 보면 된다. 한 번 곰곰이 되새겨보라, 어떤 일도 모두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시작하고 나서 12년이 지나면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는 것이고, 그 변화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면 그 일은 실패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12년이 지나면서 더욱 성장하는 모습이라면 앞으로 12년은 더욱 발전적이고 더 큰 성취를 기대해도 좋다는 얘기이다.
더 크게는 나라의 일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는 1964년 제 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발전의 기틀을 잡아나갔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1976년을 전후하여 중화학 공업에 대한 투자와 육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로부터 다시 12년이 지난 1988년에는 드디어 급성장을 보이고 88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알렸고, 그로부터 다시 12년이 지난 2000년이 되자 복지국가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것이 12년 마디로 세상의 변화를 보는 방법이다.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 역시 이 속에 있는 것임을 알 것이다. 그리고 내년은 2000년에서 12년이 지난 2012년이 된다. 하지만 일방적인 성장의 모습을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세상 만물은 일직선으로 뻗어가는 법이 없으니, 과연 내년부터 12년간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간단하게 답한다면 1964년부터 12년 단위로 이어온 줄기찬 성장을 이제 성찰하고 조정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60년의 커다란 주기를 갖는데, 그 중에서도 마지막 12년은 언제나 그간의 흐름을 조정하고 성찰하는 기간이 되기 때문이다.
조정과 성찰 역시 실은 훗날 더 힘찬 걸음을 내딛기 위한 내적 성장의 과정이라 보면 되겠다. 우리가 지난 48년간 고속성장을 해오는 과정에서 드러나고 불거진 실로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점들을 정리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그렇다고 보면 되겠다. 물론 그 사이에는 남북한의 통일이라는 과업도 포함된다. (북한의 실패한 체제는 이 기간 중에 사라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12년 단위, 즉 한 다스로 묶어서 살펴보면 대단히 흥미롭고 의미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증시 역시 그렇다. 거시적인 눈으로 살피면 우리 증시는 1986년부터 대상승을 시작했고 전 국민들의 관심사로 등장했으니 이를 기산점으로 삼으면 된다. 1986년부터 1998년까지는 사실상 우리 국민들의 증시였다면, 1998년부터는 외국자본의 힘이 좌지우지하는 글로벌 증시의 한 축으로 편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미국 금융위기를 겪었던 우리 증시는 2010 년부터 또 다른 질적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제 우리 증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주식 시작이 아니며, 일부 외국계 자본이 좌지우지하는 시장도 아니다. 그보다 더 큰 차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글로벌 시장에 편입된 것이다.
이제 국내 증시의 동향은 외부 세계로부터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장이 아니라 국내 증시의 동향 자체가 글로벌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으로 바뀐 것이다. 다시 말해 양방향 시장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증시 종목 중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종목의 움직임과 그렇지 않은 종목들 간의 움직임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증시가 올라도 전혀 오르지 않는 종목이 너무나도 많아진 현실이다. (그러니 이런 흐름을 감지해야만 주식 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지금까지 12년의 기간은 세상 변화의 큰 틀을 파악할 수 있는 묶음, 다스의 단위임을 설명 드렸다. 파악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이든 가능하다. 기산점만 정확하게 잡으면 말이다. 개인의 일이든 나라의 일이든 세계의 일이든 모두 가능하다. 가령 2001년 가을 9.11 테러가 발생했고 그로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렇다면 테러와의 전쟁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가늠해보려면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3년의 상황을 보면 답이 나온다. 이미 오사마 빈 라덴은 죽었지만 그 해에 가서 알카에다가 무너진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로서 중동 테러는 진정 국면 내지는 해소 국면으로 들어간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이 1982년의 일이었다. 그러니 1994년에 가서 이미 세계적인 메이커의 반열에 들어섰고, 2006년에 이르러서는 세계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석권하는데 성공했다. 이 12년 묶음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방법은 아주 간편해서 적용이 너무나도 쉽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활용해보라는 얘기이다. 참고로 하나 더 알려드리고자 한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거나 명분이 없을 경우 그것이 이어질 수 있는 기간도 이 방법으로 헤아려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일제의 조선 지배는 36년 만에 끝이 났으니 이는 12년이 세 번 거듭된 것이고, 최근 서울 지하철 노조가 민노총에서 탈퇴를 했으니 그 또한 시작으로부터 24년만의 일이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잘못된 것이나 일이라면 12년 단위의 마디 지점에서 실패로 종료가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이트진로웹진 11월호] 마술과 사랑에 빠진 남자. 마술사 최현우를 만나다 (0) | 2011.11.04 |
---|---|
[하이트진로웹진 10월호] 이율배반적인 매력의 소유자, 데뷔 12년차 성시경을 만나다 (0) | 2011.10.11 |
[하이트진로웹진 8월호] 떠오르는 중국, 세개의 변수 /김태규 (0) | 2011.08.05 |
[하이트진로웹진 7월호] 성공 신화와 디플레이션의 그림자 /김태규 (0) | 2011.07.06 |
그 날은 20명가량 왔는데, 오리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사이다를 마셨다. 첫 사이다 잔을 부딪치며 모임의 방장이 말하는 건배사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의 애환을 이해하길 바라며, 파이팅!”이었다. 애환? 애환이 왜 없겠나. 한국처럼 술을 자주 마시고, 자주 권하는 나라도 드물 테니 말이다. “술 안 마신다고 직장 상사가 성질내고….” 20대 중반의 한 여자는 이처럼 무작정 술 권하는 사회에 대처하는 비결이 있었다. “먹고 죽으면 그 다음부터는 안 권해요.”
애환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안주빨만 세운다고 뭐라 그러고….” 20대 후반의 한 남자가 흥분하며 말했다. “똑같은 음식인데 왜 옆에 술만 놓으면 안주로 변해야 하냐. 우리처럼 술 못 마시는 사람에겐 술이 있든 없든 그게 음식이고 식사인데. 정말 모든 게 술 마시는 사람들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게 억울하다.” 이 남자는 술이 싫어서 대학 때 엠티 같은 것도 일절 안 갔단다. 나중에 돌아보니 이렇다 할 추억이 없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겠냐고 했다. 이처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성장 과정도 달라진다.
하지만 어쩌겠나. 사회에선 술 마시는 사람들이 주류, 酒流이자 主流이다. 술 못 마시면 비주류, 非酒流이자 非主流이다. 사회생활 하려면 술 못 마시더라도 술자리에 끼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물정도 익히고, 정보도 교환하고, 사람도 사귄다. 아까 그 친구 말이, 대학시절에 술자리를 멀리 하니까 학창시절에 추억이 없게 됐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대학 때부터 술 하나는 잘 마셨다. 主流는 아니어도, 항상 酒流였다. 그래서 술 못 마시는 이들의 애환을 잘 모르지만, 주변에 술 못 마시는 이들을 여럿 봤다. 또 그 중 몇몇을 오래도록 봐왔다. 그 관찰의 결과를 추려보면, 술 못 마시는 이들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할 것 같다. 첫째, 술을 처음부터 끝까지(20대부터 40~50대까지) 못 마시는 사람. 둘째, 20대에 술을 정말 못 마시다가 가랑비에 옷 젖듯 술이 늘어 40대 넘어 술꾼이 된 사람. 셋째,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마시다보니 술이 조금 느는 듯했는데 30~40대에 결국 탈이 나서 非主流로 돌아오고 만 사람.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이는, 나보다 나이가 열 살 가량 많은 법조인이다. 검사를 꽤 오래 했는데, 80년대 후반 내가 일간지 검찰 출입 기자를 하면서 알게 됐다. 알다시피 검사들 술 좀 많이 먹나. 특히 검사가 기자와 만났다 하면, 그 시절엔 시작부터 끝까지 주구장창 폭탄주를 마셨다. 그래서 검찰 공보관은 무엇보다 술 잘 마시는 검사를 뽑았다. 그런데 이 술 못 마시는 양반이 공보관이 됐다. 공보관이 돼선, 기자들과의 술자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럼 기자들이 봐줄까.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 아까 무주클럽의 20대 중반 여자가 말한 것처럼 그도 ‘먹고 죽었다.’ 그에게 술 먹인 기자들은 조금 뒤 119를 불러야 했다. 그 뒤론 누구도 그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그래도 난 신기했다. 술 마시지 않고, 맨 정신에, 술 취한 이들 노는 걸 보고 있으면 한심하고 재미없을 텐데, 그는 함께 술 마시고 취한 사람처럼 잘 어울렸다. 그는 원래부터 직업정신이 투철했다. 보직이 공보관이고, 그걸 잘 하려고 애쓰니까 술 마시지 않고도 그렇게 되는가보다. 언젠가부터, 공보관 그만둔 지 10년도 더 지나서, 그는 술자리에서 자청해서 위스키 한잔, 혹은 폭탄주 한잔을 마시곤 했다. 그리곤 잠시 취기를 즐기는 듯했고, 얼굴이 시뻘게져서 더 이상은 마시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아! 술을 못 마셔도 취기가 그리울 때가 있겠구나!’
두 번째 유형은 나보다 조금 늦게 언론사에 들어온 후배 언론인이다. 그는 처음 신문사에 들어왔을 때, 그러니까 20대 후반까지도 술을 전혀 못했다. 조금만 마시면 토하고, 그리곤 조금 있다가 뻗어서 잤다.
그런데 이 친구는 워낙 말이 많고 떠들기를 좋아했다. 이 소식, 저 소식 물어다가 동네방네 전하는, 수다스럽기까지 한 친구였다. 당연히 술자리에도 잘 끼었는데, 자기가 싫어하는 이들과는, 술을 못 마신다는 핑계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골라가며 마음 맞는 술자리만 다니다보니 어느덧 술이 친숙해졌는지, 언젠가 보니 소주 두 세잔, 어떨 땐 반병까지도 마시고 있었다. 40대에 들어서더니 웬걸, 자기가 먼저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기까지 했다. 술을 늦게 마시기 시작해서 간이 더 싱싱하다고 웅변하듯, 일주일에 서너 번씩 술 마시고 다니는 술꾼이 돼버렸다. 앞에 말한 법조인과는 체질이 달랐던 모양이다.
마지막 유형은 여러 명 있다. 나보다 선배인 만화가도 있고, 대학 교수하는 내 친구도 있다. 이들은 젊은 시절 남에게 지기 싫어서, 혹은 술 마시고 어울리는 그 분위기가 좋아서 악으로 깡으로 술을 마셨다. 만화가의 경우엔, 술이 느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무슨 약까지 지어먹었단다. 그래서 느는 듯했는데, 늘었다 싶은 순간 술 마시고 탈이 나고, 그게 오래 가고, 그런 식으로 한 동안 도돌이표를 돈 뒤엔 술을 멀리 하기로 작정했단다. 교수하는 내 친구는, 30대 중반에 술 마시고 피를 토하고 나선, 몸이 술을 거부하더란다.
앞에 말한 법조인이나, 교수 친구처럼 몇몇 술 못 마시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표정이 있다. 약간 냉소적인 듯하면서, 어찌 보면 호기심이 가득한 것 같기도 한, 뭐랄까, ‘저것도 재미있다고 하고 앉았나?’와 ‘저러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가 반씩 섞인 눈으로 남들을 관찰하곤 한다. 내겐 그 표정이 꽤나 지적으로 보인다. 그렇지. 나도 술 마시지 않고 차분하게 지내다보면, 그처럼 권태와 탐구가 한데 섞인, 매력적인 모습이 나오지 않겠나. 그런데 이틀이 멀다고 흥청망청 마셔대니 도무지 지적인 표정이 나오기가….
[하이트진로웹진 11월호] 술 문화가 바뀌는데 나(우리)는 아직도... (0) | 2011.11.04 |
---|---|
[하이트진로웹진 10월호] 그를 만나야만 마시는 술 '아무개주(酒)' (0) | 2011.10.11 |
[하이트진로웹진 8월호] 낯선 술과의 데이트 /임범 (0) | 2011.08.05 |
[하이트진로웹진 7월호] 가장 맛있었던 한 잔의 추억 /임범 (0) | 2011.07.06 |
방송국 PD? 그때까지는 그러한 직업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나에게 ‘방송국 PD’는 낙인처럼 뇌리에 박혀 버렸다. 무조건 조용필을 만나 방송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방송국 PD의 꿈은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가서도 계속 남았다. 친구들과 소주 한 잔 들이키면서도 조용필 얘기를 하며 PD가 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오랫동안 그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어느 순간부터 ‘오 PD'하면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질 않았다.
방송국 PD가 되기 위해 방송국의 문을 두드렸지만, 매번 면접에서 떨어지는 좌절을 겪었다. 몇 번의 좌절은 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운명은 다른 곳에서 열렸다. 우연찮게 ‘방송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방송이란 분야가 워낙 다양해서 그 속에서 나의 영웅이었던 ‘조용필’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쇼프로그램을 해야 조용필을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코미디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작가의 길을 걷고 있던 어느 날, 방송국의 국장과 함께하는 제작팀의 회식자리가 열렸다.
소주와 맥주, 그리고 폭탄주가 오가던 그때, 장기자랑 시간이 되어 조용필의 노래를 멋지게 부르던 나에게 국장이 한마디 건넨다.
“오작가, 노래 잘 하는데. 음악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쇼 프로그램 맡아 볼래?” 그 말 한마디에 술이 확 깼다. “그럼요! 제가 사실 조용필 씨 때문에 방송국 들어왔습니다. 열심히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매주 한 명씩 당시 최고의 가수를 데리고 한 시간짜리 음악과 토크가 있는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맡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났을 때, 국장님이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오작가~ 조용필 씨 좋아한다고 했지? 내일 조용필 씨 하고 약속을 했으니까 집으로 찾아가 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어린시절 나의 영웅을 만나게 되다니!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조용필 씨요?”, “그래, 이번에 조용필 씨 어렵게 섭외했어. 자네가 조용필씨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LP판도 다 갖고 있다고 했잖아. 잘 만들어 봐.” 그날 밤 나는 담당 PD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그때 마신 소주는 정말 최고로 달콤한 맛이었다.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방배동 조용필 씨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드디어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오던 그 영웅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영웅에게 두 개의 큐시트를 보여주었다. 하나는 그동안 방송에서 많이 보여주었던 것으로 짠 방송용 큐시트였고, 또 하나는 그동안 방송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조용필의 음악으로만 꽉 찬, 즉 나의 영웅을 위한 큐시트였다. 두 개의 큐시트 중 나머지 한 장을 본 영웅이 갑자기 쳐다보며 “나에 대해서 많이 아는구나. 그런데 나도 이걸 하고 싶은데 방송에서는 참 힘들지. 일단 첫 번째 거로 가자!” 사실 그때 나에게는 첫 번째이건 두 번째 큐시트이건 상관이 없었다. 왜냐면 나의 영웅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녹화 당일이 되었다. 오후 6시에 녹화가 시작될 예정인데, 점심부터 녹화장은 위대한 탄생의 연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곳에 바로 영웅이 와 있었으며 무려 6시간의 리허설이 이어졌다. 녹화가 시작되고 2시간동안 영웅의 주옥같은 노래가 스튜디오를 꽉 채웠다.
녹화가 끝난 후,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웠던 영웅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해야 할 그 순간, “녹화도 잘 끝났는데, 그냥 갈 거야? 술 한잔 해야지!” 담당 PD와 나는 영웅과 함께 그의 집 근처인 방배동의 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여기 소주 두 병하고, 안주는 알죠?” 평소 잘 오던 술집이어선지 주인은 소주 두 병을 갖다 주었고, 그때부터 남자들만의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난 술 중에서 바로 이 투명한 소주를 좋아해. 무엇보다 깨끗하잖아. 특히 녹화나 공연 끝나고 마시는 소주는 정말 맛이 있지.” 그때 나도 한마디 했다. “선생님, 사실 제 몸에는 소주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그때 한 소주 회사의 광고 카피의 ‘진로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인용한 농이었다.
이 말에 기분이 좋았던지 소주잔이 주거니 받거니 지나갔다. 그리고 몇 잔의 소주를 들이켰을 때, 조용필 씨가 말했다.
“오작가야, 나한테 선생님 소리 하지 마. 형이라고 해!”, “네? 형님이요?”, “그래. 선생님 하면 내가 너무 늙어 보여. 형이라고 해. 소주 맛도 더 좋아지잖아.” 영웅과의 만남도 만남이었지만, 소주로 인해 그 영웅을 형님이라 부를 수 있다니 정말 그때처럼 소주가 사랑스럽고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
남자 셋이 마시다 보니 어느덧 소주 4~5명이 자리에 쌓이고 영웅도 우리도 술기운이 돌던그때, “오작가야,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더하자!”라고 영웅이 한마디 또 던졌다. 정말 꿈속을 거니는 순간이었다.
자리를 옮겨 영웅의 집에서 다시 술자리가 벌어졌다. 술자리는 영웅이 음악을 만드는 방에서 이루어졌다.
“난 여기가 참 편해.”하면서 비틀즈 음반을 보여주며 “비틀즈 음악은 언제 들어도 참 좋아.”하면서 자신의 음악보다는 비틀즈 음악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부인 안진현 씨와 비틀즈 음악에 맞춰 부르스도 함께 추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의 집을 나선 시간은 새벽 2시경, 거나하게 취했지만 나는 기쁨에 취해 오늘 밤은 이렇게 잠들 수가 없었다. 영웅 형님과 소주잔을 기울인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장PD, 우리 소주 한잔 더 하고 가자!! 투명한 소주 맛을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라고 말하며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1995년 봄날, 소주 한 잔으로 영웅을 형님으로 불렀던 그때의 소주 맛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하이트진로웹진 11월호] '한 잔'에서의 첫눈 (0) | 2011.11.04 |
---|---|
[하이트진로웹진 10월호] 첫 맥주 그리고 첫 키스 (0) | 2011.10.11 |
[하이트진로웹진 9월호] 여름 불씨 (0) | 2011.09.14 |
[하이트진로웹진 8월호] 너의 빈 잔 / 임경선 (0) | 2011.08.05 |
[하이트진로웹진 7월호] 맥주부인 바람났네 /문선희 (0) | 2011.07.06 |
삼포해안길은 최치원의 전설이 서린 동백섬을 한 바퀴 돌아 3개의 포구를 걷는 해안길이다. 대구탕과 횟집으로 유명한 해운대 미포, 조개구이집이 많은 청사포, 송정해수욕장이 있는 구덕포 세포구를 연결 지어 삼포라고 한다.
처음 시작점은 동백섬이었다. 조선호텔 뒤에 위치한 동백섬은 해운대를 바라보며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동백섬은 해운대 해수욕장 남쪽 끝에 자리한 섬이었지만 장산폭포에서 흘러내린 물과 부흥동에서 흘러내린 물이 해운대 지역의 모래를 실어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육지와 이어지게 되었다.
가수 조용필의 노래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마안~’처럼 3~4월에 빨간 동백꽃이 절정을 이루고, 여름에는 초록빛으로 물든다.
6월의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끝없이 펼쳐진 동해 바다를 보고 걷고 싶었지만, 머피의 법칙은 나를 지나쳐 가지 않았다. 흐릿한 하늘과 자욱한 안개로 바다가 덮여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산책로를 걷다보니 순환길 옆 암반지대에 황옥공주라는 청동인어상이 슬프게 앉아 있었다. 덴마크에 인어공주가 있다면 한국엔 황옥공주가 있다고 한다.
해운대를 지나 동양의 몽마르트 언덕으로 불리는 달맞이 길의 맨 아랫부분에 자리한 미포를 만난다. 미포는 소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와우산의 맨 아래에 있어 꼬리 ‘미(尾)’를 써서 미포라고 불린다. 미포를 지나 달맞이 길로 올라가니 ‘문탠로드’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특히 미포에서 청사포, 구덕포로 가는 길목을 이어주는 ‘문탠로드’는 삼포해안길을 대표하는 길이다.
문탠로드의 문탠(moomtan)은 선탠(suntan)이란 말을 뒤집어 달빛을 받는다는 표현과 길의 영문 발음을 합친 합성어다. 즉, 달빛을 받으며 걷는 길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일몰부터 밤 11시까지, 새벽 5시부터 일출까지 조명이 들어와 아름다운 숲속 길을 연출해준다.
더불어 문탠로드는 해운대구 직원들이 월급끝전을 기부하여 ‘새가 노래하는 정겨운 길’을 조성하고자 팔손이나무를 길 양옆에 식수한 나눔의 길이다. 그들의 나눔으로 사람들은 초록빛 숲을 거닐고, 바다내음을 맡고,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자분자분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걷다보니 바다 쪽으로 철길이 보인다. 이 철길은 동해남부선 해안철도로 1918년 18월 31일에 첫 운행을 시작해 부산과 포항을 연결한다. 현재 복선전철화 사업이 진행 중에 있어 해운대-송정 구간 이설이 완료되면 아름다운 해안절경으로 유명한 이 구간을 통과하던 열차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길의 중간쯤 갔을 때 청사포와 구덕포의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까지 온 이상 청사포 마을로 들어가 바다도 보고 조개구이도 보며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청사포 마을을 보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구덕포로 가기로 결정했다. 청사포로 내려가기 위해 동해남부선 건널목을 건너내려 가면 수많은 조개구이 집과 바다에 정착된 배,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가 마주보고 서 있다. 시계를 보니 5시. 기온차로 생긴 안개가 점점 사라지고 파란 바다가 얼굴을 드러낸다. 안개 낀 풍경도 좋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안개가 사라지자 아이처럼 기뻤다. 멀리까지 왔는데 바다를 눈에 담아갈 수 있어 진심으로 안도했다. 청사포는 난류와 한류가 섞이는 동해의 남쪽 끝, 남해의 동쪽 끝에 있어, 옛날부터 물고기가 풍부하고 질 좋은 횟감이 많이 잡혔다. 그런 탓에 포구의 방파제는 늘 낚시꾼들로 붐비고 주변엔 횟집과 조개구이 촌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쇠락하지 않은 생동감 있는 어촌마을의 풍경이 즐겁다. 전복과 가리비, 새우 등이 풍성한 조개구이를 먹고 갈림길로 되돌아 갔다.
구덕포로 향하는 길 귀신처럼 음침한 사스레피나무가 쭉 늘어서 있었다. 사스레피나무는 차나무과의 상록활엽관목으로 3~4월에 피는 꽃에서 계분 냄새가 난다. 유쾌하지 않은 냄새지만 사람에게는 살균, 진정작용하며 공기청정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옅게 남아있는 계분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동해남부선 철길의 굴다리를 지나니 구덕포가 나왔다. 해안 길에서 물이 빠진 갯바위에서 고동을 잡는 아이들과 엄마, 낚시를 하는 아빠로 보이는 가족들이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해안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멀리 송정해수욕장의 백사장이 보였다. 백사장에는 뜨거운 여름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아직은 차가운 바닷물에 풍덩 뛰어든 개구쟁이 꼬마들과 가족들, 다정한 연인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여름의 길목에 들어서는 뜨거운 6월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선물해주는 것 같다. 길고 긴 삼포해안길의 목적지에 출발 5시간 만에 도달한 나 역시 행복한 웃음이 절로 난다. 송정해수욕장의 죽도공원까지 천천히 걸어가서 해가 뉘엿뉘엿 지는 일몰을 바라보는 것으로써 삼포해안길의 긴 여정이 끝났다.
오랜만에 새소리 들리는 청량한 소나무 산길과 자욱한 안개 속에서 들리던 파도소리 함께한 해안가를 걸으며 ‘부산’과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었다.
[하이트진로웹진 11월호] 섬 안의 섬, 강화도 석모도 (0) | 2011.11.04 |
---|---|
[하이트진로웹진 10월호] 남도여행 1번지, 순천으로 떠난 가을 여행 (0) | 2011.10.11 |
[하이트진로웹진 9월호] 역사와 충절을 배우는 그곳, 진주성으로 가다 (0) | 2011.09.14 |
[하이트진로웹진 8월호] 언덕길 위에 펼쳐진 알록달록, 경남 통영 동피랑 마을 (0) | 2011.08.05 |
[하이트진로웹진 7월호] 전국 유일의 태교 숲길, 중미산자연휴양림 (0) | 2011.07.06 |
떡볶이는 한국인의 국민 간식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콤달콤한 양념과 쫄깃쫄깃한 떡의 식감. 순대나 튀김을 찍어먹을 수 있어 활용도도 높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사 먹는 사람 뿐 아니라 파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도 떡볶이는 계절조차 타지 않는 효자 메뉴다. 숱한 아이스크림, 생과일빙수, 생과일쥬스, 커피전문점의 수명이 짧았던 가장 큰 원인은 계절에 따라 현저한 매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여름 장사 잘해서 겨울나기를 한다’는 주인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겨울에도 월세를 내야하고 직원 월급도 줘야 하며 공과금은 청구된다. 한철 장사는 한철 장사로 끝날 뿐, 다음 계절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 여러 이유에서 떡볶이는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오랜 세월 국민 간식으로 인기를 끌어왔다. 그러나 그 동안 떡볶이집 하면 시장통이나 길거리의 허름한 곳을 연상시키기 마련이었다.
간혹 떡볶이 자체는 좋아하지만 위생상태가 지저분해서 먹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브랜드 떡볶이가 뜨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사랑하지만, 반대로 마땅히 깔끔하고 편하게 먹을 곳은 적었던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브랜드 떡볶이는 바로 이 점을 공략했다. 누구나 사랑하는 떡볶이를 깔끔하고 쾌적한 곳에서 먹을 수 있게 했다. 젊은 층이 좋아할 산뜻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위생관리방법을 연구하며 실천하고 있다. 직원들은 유니폼이나 앞치마를 입어 위생적인 느낌을 준다. 포장판매 방식에 있어서도 좀 더 깔끔하고 편하다. 예를 들어 ‘아딸 떡볶이’의 경우 피자 박스처럼 손잡이가 달린 아기자기한 박스에 떡볶이를 담아준다. 손잡이가 달려있어 선물용으로도 손색없는 포장 박스는 흔들어도 음식이 섞이거나 쏟아질 염려가 없게 설계됐다. 과거엔 무조건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줬던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메뉴를 이렇게 깔끔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 브랜드 떡볶이의 성공비결이다. 한 마디로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고급레스토랑에 비하면 이 정도의 수고와 노력은 남다른 게 아니다. 그러나 메뉴가 서민적이기에 오히려 더 깔끔함과 편리함에 공들인 수고가 부각되는 것이다. 분식은 무조건 길거리에 서서, 좋지 않은 위생상태도 감수하고 먹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깬 것이다. 덕분에 요즘 초등학생들은 생일파티를 떡볶이집에서 한다고도 한다.
이들 브랜드 떡볶이는 관리부터가 다르다. 기존의 길거리나 시장통 떡볶이집들은 더 친근감은 있었을지언정 체계적인 관리에 대한 마인드는 부족했다. 베테랑이라면 모를까, 장사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작정 혼자 떡볶이가게를 차리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브랜드 떡볶이들은 본사와 가맹점 간의 관리를 통해 성공 확률을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인건비를 줄이면서도 효율적인 운영을 하는 것이다. 식기세척기 사용, 부분별 셀프서비스 실시, 시간별 아르바이트 고용, 선불제도, 음식 메뉴얼 제작 등이 그것이다. 모두 시행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것들이다. 특히 ‘분식집에서 무슨 셀프야?’ 라며 불만을 표하던 손님도 많았다. 그러나 시스템은 셀프시스템이되, 분위기는 기존의 떡볶이집보다 더 밝고 친절하게 만들어 그 불만을 조금씩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분식집에 웬 식기세척기냐며 의아해 하는 손님도 있었지만, 이젠 시간 절감은 물론 더 위생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들은 요리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딸 떡볶이’의 경우 아예 요리 연구소를 설립했다. 네 명의 연구원이 일하며 레시피 계량화, 맛 표준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 연구소에서는 소스 등을 직접 개발해 가맹점으로 보내준다.
개발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무엇일까.
맛이 일정하면서도 원거리 배송이 가능해야 하고, 배송비가 최대한 저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요 소스를 분말가루 형태나 원액 형태로 만들어져 납품하는데, 이런 시스템 덕분에 물류비를 70%까지 절감했으며, 유통기간은 최대 1년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
다른 브랜드 떡볶이도 마찬가지다. 이런 본사 중심의 시스템은 통일화된 맛을 낳는다. 새로 장사를 시작한 사람이, 시장의 몇 십 년 된 떡볶이집 할머니의 비밀 노하우를 쉽게 알아낼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브랜드 떡볶이는 세상에서 유일할 정도로 놀라운 맛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맛은 보장이 된다. 100% 본사를 통해 납품받은 식재료로, 누구나 동일한 방식으로 음식을 조리하니 당연한 일이다.
판매 방식 역시 중요하다.
‘어떤 음식이냐’ 못지않게 ‘어떻게 파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떡볶이집 중 서비스 교육을 받은 곳은 드물었다. 가끔은 욕쟁이 할머니처럼 무뚝뚝하고 단순한 태도가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뭐가 있어서 저런 자신감이 있나’하는 생각도 들고 가끔 그런 분 중 더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불쾌감을 받는 경우도 있다. 브랜드 떡볶이는 이런 점을 보완했다. 주인을 요리사 보다는 경영인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론교육, 실습교육, 현장 점검, 운영 관리까지 모든 부분을 교육하며 그 과정에서 평가도 한다. 교육 후엔 모든 자료가 통계화 되어 관리된다.
물론 브랜드 떡볶이집이라고 해서 다들 친절하고 손님에게 만족감을 안겨주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브랜드 떡볶이집에서도 불쾌감을 느끼거나 서비스에 실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률적으로는 기존 떡볶이집보다 서비스 면에서 더 안정되어 있다.
가게가 들어설 입지를 분석적으로 선정하는 것도 큰 이유다. 이들은 철저한 상권 분석을 통해 타깃 고객을 정한다. 어디에서 누구를 상대로 영업을 하느냐에 따라 그 매출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 떡볶이집들은 재래시장 또는 초중고등학교 앞에 위치했었다. 그런데 브랜드 떡볶이는 간식을 자주 사 먹는 20~40대 직장인과 주부를 공략했다. 그러면서 주민 주거 공간과 가까운 곳이면서, 주민 동선 핵심 요지에 장소를 냈다. 브랜드 떡볶이의 주 고객층 중 60%가 여성이며 그 중에서도 20~30대 여성이 50%정도를 차지한다. 그들은 기존 분식 구매자였던 학생보다 구매력이 높다. 즉, 가격이 비싸도 위생과 맛에서 더 뛰어나다면 얼마든지 추가 구매가 가능한 고객층이다. 이렇게 새로운 상권과 고객층 발견을 통해, 브랜드떡볶이는 놀랄만한 매출 신장을 이룰 수 있었다.
브랜드 떡볶이는 분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전통적인 서민음식과 새로운 식당 형태의 조합을 시도했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기 때문이다. 아직 더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일단 이러한 시도 자체는 앞으로도 더 늘어야 한다. 물론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먹는 분식도 매력적이다. 그 나름의 운치가 있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구수한 할머니의 말투를 들어가며 먹는 것 역시 즐거운 경험이다. 그러나 다른 욕구를 지니고 있는 소비자도 고려해야 한다. 음식은 먹고 싶지만 쾌적한 환경을 먼저 원하는 소비자는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떡볶이집과 이런 새로운 브랜드 떡볶이 전문점이 공존해야 한다. 비단 떡볶이 뿐 아니라, 한국이 가진 많은 맛있는 음식을 더 널리 알리고 이어나가려면 이러한 시도는 계속 되어야 한다.
[하이트진로웹진 11월호] 아이돌 걸그룹의 의상규제를 바라보는 두 개의 눈 (0) | 2011.11.04 |
---|---|
[하이트진로웹진 10월호] 김장훈 법이 뜬다! (0) | 2011.10.10 |
[하이트진로웹진 9월호] 누드 삼림욕? 그게뭐야? (0) | 2011.09.14 |
[하이트진로웹진 8월호] 패밀리 레스토랑 맥주 이벤트가 뜬다는데? (0) | 2011.08.05 |
[하이트진로웹진 7월호] 얼굴 없는 살인무기, 악플러의 심리학 /이진한 (0) | 2011.07.06 |
안녕하세요? 안승희 독자님. 반갑습니다. 중국 신문 중 하나인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최근 '한국소주 저도, 건강의 유혹'이라는 제목으로 진로소주의 특징과 음용법, 중국에서의 인기 등을 커버스토리로 자세히 다뤘습니다.
환구시보는 인민일보사가 발행하는 국제신문으로 1993년 1월 3일 창간됐으며 주 2회에 발행하다가 2006년 1월부터 日報로 변경해 월요일~금요일에 발행하고 있습니다. 2011년 3월 16일에 실린 전문을 번역하고 요약해서 말씀드릴게요.
실의에 빠진 두 청년이 제 집 마냥 포장마차를 찾아 고기 한 접시를 주문하고 나면, 이에 빠질 수 없는 은은한 녹색병 속의 맑고 깨끗한 술, 이 술을 투명한 술잔에 따라 단숨에 들이키는 모습은 거의 모든 한국 드라마에 반복되어 등장한다. 소주를 마시는 일이 모두 시름을 잊기 위함은 아니겠으나, 한국인의 생활 속에서 친구 모임이나, 경사가 있을 때나, 또는 일상의 크고 작은 술자리에서 품질 좋고 저렴한 ‘소주’를 빼놓을 수 없다. “국민 소주”라는 칭호가 한국에선 발 없는 말이 되어 퍼져나갔고, 한국 드라마의 방영 열기 또한 세계적인 유행을 만들어 내었다.
한국에서 온 보드카
2년 전, 미국의 영어사전에 정식으로 수록된 한국 “소주”의 정의는 “쌀을 증류하여 얻은 주정의 함량이 20%인 한국의 보드카”이다. “SOJU”는 Merriam-Webster 출판사의 “대학사전” 최신판에 추가된 100여개의 (미국에 뿌리 내린) 새로운 말들 중에서 가장 지역특색을 지닌 말이며, 또한 “소주”라는 말이 세계적으로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예증이다. 저렴한 가격, 깨끗한 맛은 한국소주를 세계 80여 개국에 수출하여 급속히 유행토록 하였다. 구미시장에서 한국 소주는 이미 증류주의 맏형 자리를 확보하였고, 프랑스의 와인처럼 “한국 소주”는 증류주 중의 극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 소주는 상대적인 후발주자이다. 10여 년 전 중국에 진입하였을 때는 중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에게만 사랑을 받았을 뿐이어서, 한식 불고기집과 한국인이 소비주체인 슈퍼마켓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한국 소주가 진정으로 중국인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은 불과 최근 2년의 일이다.
중국인의 입맛은 변하고 있다.
소주는 곧 진로다. 대다수 중국인들의 한국소주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다. 진로의 84년에 걸친 전통과 정수는 한국소주 브랜드 중 가장 유구한 양조 역사를 일궈내었다. 소주는 진로다. 이 인식은 한국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다. 2001년 진로소주가 힘차게 중국에 발을 딛었을 때, 중국시장 개척의 10년 탐색은 시작되었다. 관계자는 “처음 몇 년 간, 진로 소주를 소비하는 사람은 중국에 있는 한국인과 조선족이었고, 대다수 중국인은 싱겁고, 덤덤한 맛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우리는 까르푸, 테스코, JIADELI 등 대형 마트에 진입하였고, 그 외에도 버스 차체 광고 등을 진행했다고 말한다. 중국인의 입맛이 변하고 있다. 그것도 순수한 맛의 한국 소주를 받아들이도록 변하고 있다. 덧불여 관계자는 말했다. “점점 더 많은 중국인들이 불고기를 먹을 때 진로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보다 건강하고 낮은 도수의 美味 유혹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윤동호 독자님. 빙점여과공법은 하이트맥주의 제조기술입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맥주는 맥아에 들어있는 영양소에 의해 1차 발효가 됩니다. 1차 발효가 끝난 후 저장단계에서 숙성되어 맑고 투명하게 여과될 준비를 합니다. 저장이 끝난 맥주에는 고분자 단백질, 폴리페놀, 탄수화물, 이온성분 등 여러 가지 성분이 들어있습니다. 이들은 빙점(氷點) 부근의 온도에서는 응집하고 온도가 상승했을 때는 다시 맥주에 용해되는 성질이 갖고 있습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 맥주의 저장부터 여과까지 모든 공정을 빙점으로 유지시키면서 응집성분들은 제거하는 것이 바로 ‘빙점여과공법’입니다. 복잡한 여과공정 중 온도를 계속 빙점 이하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설비를 갖추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빙점여과공법을 통해 맥주의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이트’의 근본적인 속성인 ‘깨끗함’과 초정밀마이크로 필터링을 거쳐 비열처리맥주의 ‘신선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이트진로웹진 11월호] 우리에게도 장난감이 필요하다! (0) | 2011.11.04 |
---|---|
[하이트진로웹진 10월호] 맥주에 취하고 예술에 한 번 더 취하고 (0) | 2011.10.10 |
[하이트진로웹진 9월호] 술잔은 시원하게, 인생은 뜨겁게 (0) | 2011.09.14 |
[하이트진로웹진 8월호] 미국 대학생들이 술자리에서 즐겨하는 게임은? /양유리 (0) | 2011.08.05 |
[하이트진로웹진 7월호] 한국과 미국 대학생의 술 문화 비교~ 있다, 없다! /양유리 (0) | 2011.07.06 |
소고기 구이 무쌈 샐러드는 육즙의 감칠맛을 내는 소고기와 입맛을 돋우는 초절임무를 사용한 상큼하면서 고단백 영양만점의 안주입니다. 게다가 쉽고 간단한 레시피로 집에서 뚝딱 만들 수 있어 더욱 좋은 담백한 소고기 구이 무쌈 샐러드와 소주를 준비해 식탁을 차려보아요.
소고기(불고기감 200g), 초절임무(1팩), 깻잎(20장), 참나물(1줌), 영양부추(1줌), 무순(1줌), 양파(1/4개)
* TS(큰술) ts(작은술)을 의미합니다.
+ 채소 양념장 : 고춧가루(1TS), 양파즙(2TS), 다진 마늘(1ts), 설탕(0.5ts), 맛술(1TS), 참기름(1ts), 식초(1TS), 통깨 약간
+ 소고기 밑간 양념 : 양파즙(1TS), 간장(1TS), 맛술(0.5TS)
+ 소고기 구이 양념 : 다시마 육수(4TS), 간장(1TS), 맛술(1TS), 생강가루(0.5TS)
1. 소고기는 키친타월로 눌러 핏물을 제거한 뒤 분량의 밑간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 30분간 재웁니다.
2. 깻잎, 참나물, 양파, 무순, 영양부추는 채 썰어 준비합니다.
3. 채 썬 채소들에 분량의 채소 양념장을 넣어 가볍게 버무립니다.
4.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밑간한 소고기를 살짝 굽습니다.
5. 소고기가 반쯤 익으면 분량의 소고기 구이 양념을 넣어 국물이 없도록 센 불에서 바짝 졸입니다.
6. 초 절임 무에 소고기 구이와 야채 무침을 함께 올려 말아주면 완성됩니다.
(상에 낼 땐 소고기 구이, 초절임 무, 야채무침을 따로 따로 담아 직접 싸 먹도록 해도 좋아요.)
여름이 왔습니다. 커피를 주문할 때도 뜨거운 것보다는 차가운 아이스로 주문합니다. 안주도 차가운 건 없을까요? 여기 ‘오징어 물숙회’가 있어요. 아삭한 오이와 무순, 풋고추를 넣고 살얼음을 동동 띄운 오징어 물숙회는 여름의 별미 안주로 꼽힙니다.
오징어(1마리), 오이(1/2개), 양파(1/4개), 깻잎(15장), 무순(1줌), 풋고추(1개)
* TS(큰술) ts(작은술)을 의미합니다.
+ 국물 양념장 : 다시마 우린 물(3컵), 고추장(2TS), 설탕(2.5TS), 고춧가루(0.5TS), 국간장(1TS), 식초(2.5TS), 참깨 약간
1. 오징어는 가늘게 채 썬다.
2. 끓는 물에 채 썬 오징어를 넣어 살짝 데친 뒤 체에 밭쳐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뺍니다.
3. 깻잎, 오이, 무순는 채 썰고, 풋고추는 송송 썰어 준비합니다.
4. 양파는 채 썰어 찬물에 20분간 담가 아린 맛을 뺍니다.
5. 다시마 우린 물에 분량의 양념을 잘 풀어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힙니다.
6. 그릇에 준비한 재료들을 담고 국물을 부어주면 완성됩니다.
(만들어 놓은 국물을 냉동실에 넣어 살짝 살얼음이 끼도록 하면 시원해서 여름에 먹기에 좋아요.)
[하이트진로웹진 11월호] 와인과 함께하는 11월의 요리 (0) | 2011.11.04 |
---|---|
[하이트진로웹진 10월호] 매화수와 함께하는 가을의 안주! (0) | 2011.10.10 |
[하이트진로웹진 9월호] 복분자와 함께하는 9월의 안주! (0) | 2011.09.14 |
[하이트진로웹진 8월호] 맥스와 함께하는 8월의 안주! /해피송(송덕성) (0) | 2011.08.05 |
[하이트진로웹진 7월호] 즐겨찾기와 함께하는 7월의 안주 /천재야옹양(김민희) (0) | 2011.07.06 |
[하이트진로웹진 11월호] 신나는 카툰 세상 (0) | 2011.11.04 |
---|---|
[하이트진로웹진 10월호] 신나는 카툰 세상 (0) | 2011.10.11 |
[하이트진로웹진 9월호] 신나는 카툰 세상 (0) | 2011.09.14 |
[하이트진로웹진 8월호] 한잔한잔 병나발 - 소주넣고 끓인 김치찌개 /김여진 (0) | 2011.08.05 |
[하이트진로웹진 7월호] 한잔한잔 병나발 - 와인과 여행 /김여진 (0) | 2011.07.06 |
‘맥스’ 시장점유율 10% 돌파 “파죽지세” 맥스의 시장점유율이 올 들어 10%를 돌파하며 하이트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맥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5월 11일 한국주류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맥스’의 출고량은 366만 5000상자로 전년 대비 21.2% 증가했다. 이에 따라 ‘맥스’의 시장점유율은 2010년 1/4분기의 8.7%보다 1.3%포인트 상승한 10.0%를 찍었다. ‘맥스’의 점유율이 두 자릿수를 차지하기는 지난 2006년 9월 신제품 출시 이후 처음이다. ‘맥스’는 출시 후 4년 7개월 동안 총 13억 6300만병(지난 2월 기준)이 팔렸다. 판매량도 매년 평균 46.4%씩 급증했다.
진로는 5월 18일 서초동 본사에서 한국해비타트와 협약을 맺고 ‘희망의 집짓기’ 후원금 8000만원을 전달했다. 한국해비타트는 무주택 서민들의 보금자리 마련을 돕는 단체이다. 임직원들과 대학생들로 구성된 희망의 집짓기 자원봉사단은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강원도 춘천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어 진로는 5월 19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 한국 JC회관에서 한국 JC(한국청년회의소)와 협약을 맺고 ‘어린이 지킴이 사업’ 후원금 5000만원을 전달했다. 한국 JC는 어린이 지킴이 사업, 출산 장려운동 등을 전개해 사회문제를 해소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하이트맥주는 5월 19일 드라이피니시 d의 새로운 광고 ‘서핑’편을 선보였다. 이번 ‘서핑’편에서 모델인 원빈은 드라이피니시d의 맛을 더욱 다이내믹하게 전하기 위해 LA의 레오 카릴로 비치의 시원한 파도에 직접 몸을 실었다. 서핑을 하며 날카로운 파도 끝에 선 쾌감으로 드라이피니시d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고 역동적인 서핑을 통해 드라이피니시d가 맥주 시장에 불러일으킨 신선한 돌풍을 보여줬다. 한편 하이트맥주는 홍대에서 ‘d-타임’ 게릴라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진로는 5월 18일 청주시와 녹색수도 청주 만들기의 일환으로 '생명수 1004만 그루 심기' 협약식을 가졌다. 이날 협약에 따라 진로는 현금 5000만원을 기탁하고, 포스터, 홍보용품 등을 제작해 시민들에게 배포한다. 이어 진로가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와 5월 19일 협약을 맺었다. 진로는 제품 라벨 1억병, 포스터, 판촉물 등을 활용해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후원한다. 앞서 진로는 2003년에도 공식후원사로 참여했다.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9월 21일부터 10월 30일까지 내덕동 KT&G 일원에서 개최된다.
하이트맥주는 5월 1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정응원’ 이벤트를 시작으로 프로야구 마케팅에 본격 돌입했다. 하이트맥주와 함께 2011년 시즌에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구단은 넥센 히어로즈,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가나다순)등 6개 구단이다.
한편 하이스코트 ‘킹덤’은 위스키 업계 최초로 3년 연속 야구장 A-보드 광고를 진행한다. 2011년 한국 프로야구 시즌 기간 동안 서울 잠실, 광주, 대구구장의 포수석 뒤에 설치된 A-보드 광고를 통해 야구장을 찾은 관객과 야구경기 시청자들에게도 ‘킹덤’을 선보인다.
진로석수는 5월 25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오감 발달과 창의력 형성에 도움이 되는 ‘퐁당퐁당 요리쿡쿡’ 어린이 푸드 테라피 교실을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천연광천수 2011년 진로석수 공익 캠페인의 일환으로 실시한 어린이 생수요리 체험 프로그램이다. 이날 행사는 아이가 엄마와 함께 생수를 이용해 독특하고 재미있게 과일화채를 만들고 맛보면서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요리학습놀이 체험 방식으로 진행해 어린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하이트진로웹진 11월호] 하이트진로 부산국제영화제 후원 (0) | 2011.11.04 |
---|---|
[하이트진로웹진 10월호] 하이트진로 국가만족도 1위 (0) | 2011.10.10 |
[하이트진로웹진 9월호] 하이트진로, 새 CI와 슬로건 공개 (0) | 2011.09.14 |
[하이트진로웹진 8월호] 하이트진로주식회사 9월 출범 (0) | 2011.08.05 |
[하이트진로웹진 7월호] 김건모.윤도현.정엽, 참이슬송 대결 (0) | 2011.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