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비싼들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고 출세의 사다리를 오를 수만 있다면 그 또한 별 문제가 없다는 국민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청년 백수 시대가 도래했고, 시간이 지나자 희망 없음을 감지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제 더 이상 비싼 등록금을 견딜 수 없다고 들고 일어섰다. 이에 다시 정치권은 국가재정이야 어찌 되든 일단 표부터 받아먹자는 식으로 불을 지피며 나서고 있다. 사악한 정치인들이라 말해도 무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정치인들만 욕을 먹을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1960년대 세계 최빈국의 나락에서 일어서고 또 줄기차게 성장하고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당장 눈앞의 일이 어려워도 참고 인내하면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과는 무조건 성공이다 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게 지나친 것도 결코 아니다.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한 자가 그렇지 않았던 자보다 분명 더 큰 성취와 성공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면 된다는 믿음, 어쨌거나 밀어붙이면 성공한다는 생각, 이런 것이 바로 성공 신화라 하겠다.
그런데 그 성공신화는 이미 2000 년대 초반부터 구조적으로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분명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 성장의 한계였다. 세상만물은 뻗어가기도 하지만 어느 때에 이르면 움츠리고 거두기도 하는 법이니 이것이 더 자연스런 리듬인 것이다.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가 남긴 근원적 메시지는 우리가 고속성장 시대가 끝나고 저성장 사회로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차입경영으로 무한의 고속 성장을 믿었던 기업들은 모조리 도태되었으니 저성장 시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정서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장차 처하게 될 어려움을 대학진학은 물론 그 이상의 고등교육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것은 분명 강인한 도전정신이었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나서지 않을 때만이 통하는 것이지 모두가 더 높은 교육수준으로 해결하고자 나서는 국면에서 그것은 분명 최악의 선택이었다. 모두가 성공신화를 가지고 있고, 하면 된다는 강인한 정신을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보여줄 수밖에 없는 모순이고 역설이었다.
저성장 시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로 성장 사회로 들어선 것이 2000년 초반이었지만, 고속 성장 시대에서 투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고등교육에 대한 의지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뒤늦은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초반 저성장 시대가 시작되었다면 고등교육 역시 그로부터 점차 감쇄되기 시작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강인한 도전정신으로 단련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그런 요구는 너무나도 가혹한 주문이었을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론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미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지 오래인 미국이 그간 금융과 차입으로 경제를 운영해왔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금융을 통한 인플레이션 경영의 한계에 봉착한 것이 미국 금융위기였음이다.
물론 미국은 아직도 여전히 돈을 찍어서 푸는 양적완화를 한 번 더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두 번에 걸친 양적완화를 놓고 볼 때 그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미국이 직면한 것은 이제 저성장 시대마저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냉엄한 현실이다.
미국의 대안으로서 중국을 기대해보는 자가 많지만, 중국 경제 역시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이머징 마켓 이상을 기대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 일본과 유럽 역시 사정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 경제 전체가 한 단계 커다란 구조조정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이미 저성장 경제이고 그나마 버팀목이던 미국 경제가 저 모양이다. 중국 시장을 기대해보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은 우리와 모든 산업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대기업들은 조금의 기술적 리드를 살려 중국시장에서의 입지를 지켜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고용과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몹시 미미할 것이다. 반면 중국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내주어야 할 부문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니 그로인한 후유증이 더 두려운 현실이다.
성공에 대한 믿음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적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한 상태에서 성공에 대한 맹신을 계속 이어간다면 그것은 최악의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 하우스 푸어 등 이런 현상이 바로 성공에 대한 맹신이 불러들인 부작용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경고 메시지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 더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발단일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기대치를 낮추어야 할 것이다. 디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현실로서 고착이 된다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전히 미국의 침체는 세계 경제의 침체라는 등식이 유효한 세상에서, 지금이라도 각자의 기대치를 좀 더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두고 패배주의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계 경제가 새로운 활력을 되찾을 때까지의 기간은 최소한 15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본다. 그러니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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