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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술과의 데이트_편의상 내 술친구 둘을 갑, 을이라고 부르자. 갑이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갔다. 피부 아토피가 심해 1년에 한두 달 씩, 특히 여름철에 햇볕 뜨거운 남쪽 나라로 가서 온 몸을 태우고 오곤 하는 친구이다. 아토피 뿐이 아니다. 혼자 낯선 곳을 떠돌기 좋아하는 보헤미안 기질도 그의 여행벽을 부추기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다. 예년 같으면 그가 어딜 다녀온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번엔 다른 친구 을이 바람이 났다. 회사의 중역으로 연봉도 꽤 많이 받고 있음에도, 을은 틈만 나면 회사 다니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맑은 바닷물, 아리따운 여인과 술? 쁘렌티안 섬으로!

싱글몰트 위스키

갑이 말레이시아로 떠난 지 보름쯤 지나, 을이 나더러 함께 갑이 있는 곳에 일주일이라도 다녀오자고 했다. 회사 생활이 지겨워서 당장 어디든 다녀오지 않으면 환장할 것 같다고 보챘다. 갑이 간 곳은 말레이시아의 쁘렌티안 섬이었다. 바닷물이 맑기로 세계에서 한두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란다.그럼에도 물가가 한국보다 훨씬 싸단다.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아리따운 여인들이 놀러와 있단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카카오톡 문자로 갑에게 물었다. “술은?” 답이 왔다. “여기도 싼 술 있는데, 맛있는 술 먹고 싶으면 사가지고 와!” 여행 일정은 7일.(6월 27~ 7월 3일) 출국하면서 인천공항 면세점에 들렀다. 싱글몰트 위스키 좋은 것 하나 사자! 그런데 와!! 2~3년 전만 해도 블렌디드 위스키 일색이던 인천공항 면세점 진열대가 십여 종의 싱글몰트 위스키로 꽉 차 있었다. 스코틀랜드 아일러 섬에서 나오는 아일러 싱글몰트 위스키 중의 한 상표 15년 짜리를 샀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비행기 갈아타고 코타바루로 가서, 택시를 타고 코알라베숫으로 가서, 배를 타고 마침내 쁘렌티안 섬에 도착했다. 빅 아일랜드와 스몰 아일랜드, 두 섬으로 이뤄진 그 곳엔 비치가 대여섯 곳 있었다. 우리는 ‘디라군’이라는 비치에 묶었는데 다른 비치보다 크기가 적은 대신 가격도 싸고 분위기가 소박했다. 듣던 대로 물빛은 환상이고, 바닷속 산호와 물고기는 스노클링에 더 없이 좋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아리따운 여성이 그리 많진 않았고, 무엇보다 술이 다양하지 않았다. 맥주는 타이 맥주 두 종류와 말레이시아 맥주 한 종류를 팔았고(그것도 세 종류가 항상 있지 않고 한 종류만 있는 날이 많았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것으로 싸구려 보드카와 ‘아락’이라는 술이 있었다.

소주의 옛 이름을 가진 증류주 ‘아락’

말레이시아의 쁘렌티안 섬 해변

아락? 전에 중동지방에 여행 다녀온 사람이 가져와서 한번 마셔본 술이 ‘아락’이었다. 알코올 도수가 50%를 넘는 증류주로, 색이 투명한데 얼음이나 물을 섞으면 우윳빛으로 변했다. 포도가 주원료인데, 말레이시아의 쁘렌티안 섬 해변. 아니스라는 향신료를 넣어서인지 그 향이 입에 썩 붙지 않았던 기억이 있는 술이다. 아락 말고도 중동, 북아프리카, 남유럽 쪽에선 아니스가 들어간 독주가 많다. 대표적인 게 그리스에서 많이 마시는 ‘우조’라는 술이다.

보드카와 마찬가지로, 100% 가까운 증류 알코올에 아니스를 비롯한 여러 향신료를 섞어 만든 식전주이다. 이것도 색이 투명한데, 물이나 얼음을 넣으면 우윳빛이 된다. 이처럼 투명한 술이 하얗게 변하는 건, 아니스에서 나온 기름이 알코올에는 용해되는데 반해 물에는 용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우조 이펙트’라고 한단다.

그럼 말레이시아 쁘렌티안 섬에서 만난 이 아락도 아니스 향이 섞인 중동 술?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무색투명한 게 아니라 위스키 빛이었고, 물을 섞는다고 우윳빛으로 변하는 일도 없었다. 알코올 도수도 25%에 불과했다. 맛? 우리 술로 치면 한산소곡주의 맛이 났는데 한산소곡주보다 덜 달았다. 뒷맛은 흡사 럼주와도 비슷했다. 알아보니, 이름만 같을 뿐 이 아락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쓰리랑카 등지에서 마시는, 코코넛 밀크가 주원료인 술이었다. 그러고보니 ‘아락’이라는 말은 우리 말 ‘소주’의 원어에 해당하는 아랍어이기도 하다. 오래전에 증류주를, 아랍어를 따서 ‘아락’이라고 불렀고, 그래서 고려시대엔 소주를 ‘아락주’라고 기록한 문건도 나온단다. 이 곳 말레이시아에서도 비슷한 연유로 이 술에 ‘아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닐까.

백리 밖에선 백리 밖의 술을 마셔라

그 섬에서 파는 아락엔 ‘오랑우탄’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술을 ‘멍키 주스’라고 불렀다. 200~250㎖ 한 병에 우리 돈으로 8천원 안팎이었다. 먹기에 큰 부담은 없는데, 그렇다고 또 맛있는 것도 아니어서 처음엔 아락을 마시기보다 내가 공항에서 산 싱글몰트위스키를 마셨다. 스코틀랜드 아일러 섬의 서늘한 해풍 향이 배인 그 위스키를 열대지방에서 마시니까 나름 별미였다. 하긴, 이 낙원 같은 섬에서 무슨 술인들 맛이 없을까. 그러나 한 병으로는 중과부적이었다. 그 위스키는 이틀 만에 동이 났다.

결국 아락을 시켜서 마셨는데, 그 곳엔 라임이 풍부했다. 라임 즙을 짜 넣고 얼음, 설탕을 섞으니, 럼주와 라임주스를 섞은 칵테일 ‘다이키리’와 맛이 거의 같았다. 그렇게 칵테일로 아락을 먹기 시작해서, 결국 이 술이 입에 붙고 말았다. 나중엔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게 라임 섞은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어느 지역, 어느 나라건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먹어온 음식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외지인이 처음 먹을 땐 역해도 먹다보면 그 맛에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나도 타이의 스프, 똠양꿍을 처음 먹을 때 그랬다. 속에서 올라오는 향이 다음날까지 역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이번 말레이시아 여행에서도 수시로 똠양꿍을 시켜 먹었다. 술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처음엔 그저 그렇던 그 술, 아락이 결국 입에 붙어서 떠나올 때 짐가방만 꽉 차지 않았다면 여러 병 사왔을 거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게, 외국에서 맛있게 마신 술을 한국에 가져와서 마시면 그 맛이 안 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왜 좋은 술은 이사 가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나. 현지의 술을 마시라는 얘기일 거다. 비슷한 말로 우리 속담에, ‘백리밖 음식(술)은 먹지 말라’는 게 있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면 어떨까. ‘백리 밖에선 백리 밖의 음식(술)을 먹어라’ 라고.

      취중진담/임범의 술과 문화  |  2011. 8. 5. 19:45




가장 맛있었던, 한 잔의 추억 확실히 금기 또는 억압과 욕망은 서로 끌리는 데가 있는 모양이다. 뭘 못 하게 하면 더 하고 싶고, 못 먹게 하면 더 먹고 싶고, 그렇게 먹으면 더 맛있고…. 술도 그런가? 그동안 정말 맛있게 술 마셨던 때가 언제였더라? 안주, 분위기 같은 다른 요소들 다 빼고 순수한 술의 맛에 내 오감이 사로잡혔던 때가 언제 언제였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주 오래 전 일밖에 생각나질 않는다. 나이 들다 보니 좋은 술에, 좋은 안주 시켜놓고 여유롭게 마실 기회가 잦아진다. 그럴 때도 술자리가 즐거웠다는 생각은 나도, 특별히 술 맛이 좋았다는 기억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보다 마시면 안 되는 상황에서 몰래 마실 때, 혹은 술과 안주 모두 조금 아쉽고 모자란 상태에서 마실 때, 그때 술 맛이 좋았던 것 아닐까.

며칠 전 오랜 친구와 밤늦게 만나 차 한 잔만 하고 들어가려는데, 배가 출출했다. 저녁도 먹었는데, 식사를 하긴 그렇고….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포장마차 가서 소주 딱 한 잔만 하고 가자’는 말이 나왔다. 그 친구는 채식을 했다. 포장마차엔 그가 먹을 안주가 없었다. 그러니 안주를 많이 시키기도 그렇고 해서 닭 모래집 구이 한 접시를 시키고, 기본안주로 나오는 오이를 많이 달라고 했다. 닭 모래집 구이가 나오기 전에 오이를 안주삼아 소주 두 세잔을 마시니까 술기운이 확 올라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그래, 술 맛이 바로 이런 거였지!’ 조금 빈속에, 알코올과 약간의 안주와 허기를 달랠 때, 그때 술 맛이 진짜…, 카! 갑자기 머릿속에 25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맥주잔에 소주 채워 원샷 하고 뛰어!

나는 군 생활을 1980년대 중반에 서울 근교에서 했다. 군부대의 출입문이 대여섯 곳 됐는데, 그 중 두 곳은 밖에 나가면 바로 주택가였다. 내가 경비중대였으니, 병장 땐 초소를 지키는 위병들이 모두 내 부하였다. 입대 동기 중에 막노동을 오래 하다 와서 몸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나보다 두 살 적었고, 떡 벌어진 체구에 비해 키가 작았다. 항상 과묵하게 솔선수범해서 일하고, 후배들을 괴롭히는 일도 전혀 없던 이였다. 한 잔 같이 하면, 말을 별로 하지 않아도 술이 맛있어지는, 그런 친구였다.

나와 내무반이 달랐는데, 하루는 밤 12시가 조금 넘어서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났다. 갑자기 둘 사이에 전기가 통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둘 중 하나가 손으로 소주 잔 꺾는 흉내를 냈고, 다른 하나는 좋다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둘은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나와선 다른 사람 못 보게 사주경계 해가며 밤길을 달려 주택가로 향해 나있는 초소를 나갔다. 후배인 위병은 “잘 다녀오십쇼!”라며 경례를 했다. 잠깐 동안의 탈영! 초소 밖 500미터 지점에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다. 1천원 내고 소주 한 병과 닭 발 두 쪽을 시켰다.

소주 한 병을 맥주잔에 따르면 두 잔 가득 나온다. 시간이 없다. 각자 한 잔씩 잡고서 그대로 원 샷! 그리곤 닭 발 한 개씩 입에 물고서 다시 열심히 뛰어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침상에 누우면 그제야 취기가 확 오르면서 천정이 빙 돌았다.

그 기분을 뭐라고 말할까. 세상이 평온한 기운으로 꽉 차 넘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술을 꼽으라면, 바로 그 때 맥주잔에 따라 원 샷 했던 그 소주다. 그 뒤로도 그 친구와 함께 한 달에 한번 꼴로 두세 차례 더 ‘야간 포장마차 왕복 달리기’를 했다. 그 친구는 지금 뭘 할까….

둘이서 보드카 1리터를 스트레이트로…

비슷한 추억이 하나 더 있다. 10년쯤 지나, 1990년대 중반에 내가 신문사 검찰출입 기자를 할 때였다. 마침 검찰이 큰 사건을 수사 중이어서 기자들은 한 달 가까이 밤샘 취재를 하고 있었다. 검사들은 수사하기 바쁜데, 검찰청에 있다고 해서 취재되는 게 뭐가 있었나. 밤샘 취재라는 게 대부분이, 혹시 무슨 일 있을까 싶어 조간신문 마감시간(새벽 2~3시)까지 검찰 기자실에서 대기하는 거였다. 시간의 객체로 버티는 것, 그게 왜 그렇게 싫던지….
밤 열시쯤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인생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무작정 그 곳(검찰청)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일종의 탈영인 셈이었다. 자리를 비우려면 타 신문사 기자에게라도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달라’는 부탁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검찰청을 나와서, 인사동 내 단골 카페로 향했다. 가면서 택시 안에서 다른 부서에 있는 후배 기자 한 명을 불러냈다. 카페에서 만나, 1리터짜리 보드카 한 병을 시켰다. 그 후배도 술을 잘 마셨다. 말이 많지 않음에도 함께 있으면 술 맛이 나는, 그런 이였다.
40도짜리 보드카 한 병을 둘이 그날 밤 스트레이트로 다 비웠다. 짜릿한 목 넘김의 맛이 무척 좋았던 것 같다. 특별한 안주도 없었다. 멸치와 땅콩 정도? 다음날 팔 다리에 힘이 없어서 혼났지만, 왠지 그 날의 술 맛이 그 뒤에도 자꾸 생각났다. 그 후배와 다시 그 카페에 가서 똑같은 1리터짜리 보드카를 시켜 스트레이트로 마셔봤다. 한 병은커녕 반병도 못 마시고 말았다. 탈영자의 죄의식, 또는 해방감이 없어서였나보다. 역시 억압이, 구속이 있어야 술 맛이 살아나는 걸까.

억압, 아쉬움, 절제가 술 맛의 비밀!

내가 술을 자주 마셔서 새삼 술 맛을 느낄 겨를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 일주일만 참았다가 술을 마셔도, 그 맛이 싱싱하게 살아날 텐데. 그런 기억 있다.

15년쯤 전에,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수치가 지나치게 높게 나와 한동안 술을 안 마신 적이 있다. 술자리 가선, 맥주 대신 무알콜 맥아음료를 시켜 먹으면서 한 달을 참았다. 그랬더니 수치가 어지간히 내려가서 식구들과 점심 먹으면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한 달 만에! 말 그대로 황홀했다. ‘내가 이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단 말이야?’

그 뒤로 외국에서 유명 브랜드 맥주, 수제 맥주 등등 맛있는 맥주들을 많이 마셔봤지만 그 ‘한 달 만의 맥주’ 맛에는 못 미쳤다. 그냥 흔한 국산 맥주였는데 말이다.

그러니 정말 좋은 건, 귀해서가 아니라 맛을 위해서라도 아껴 먹어야 하는가 보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일주일만 술을 참아봐? 7일 뒤의 술 맛을 위해, 6일을 인내해 봐? 아~~. 어쨌거나 확실한 건, 술을 남용하면 술자리까진 즐거울 수 있어도 술 맛을 제대로 느끼긴 힘들다는 거다.

필자소개 임범님은 

원문 보기 : http://webzine.hite-jinro.com/2011/07/hot/hot_1.asp?Depth1=2&Depth2=1
      취중진담/임범의 술과 문화  |  2011. 7. 6. 18:44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의 술 문화
					얼마 전 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무주클럽’이라는 단체를 취재한 일이 있다. 무주클럽 이 뭐냐고? 無酒! 술이 없다는 뜻으로, 술 못 마시는 사람들끼리‘술 권하는 사회’에 대처하는 노하우나 술 없이 노는 방법 등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직접 만나서 함께 영화도 보고, 볼링도 치고 하는 모임이다. 인터넷 카페 모임인데, 회원이 600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열성 회원들의 모임에 카메라를 대동하고 갔다. (문화방송 하이브리드 연작 다큐멘터리‘타임’중 한편‘술에 대하여’로 6월 중 방영 예정이니 많은 시청 바랍니다.^^)

그 날은 20명가량 왔는데, 오리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사이다를 마셨다. 첫 사이다 잔을 부딪치며 모임의 방장이 말하는 건배사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의 애환을 이해하길 바라며, 파이팅!”이었다. 애환? 애환이 왜 없겠나. 한국처럼 술을 자주 마시고, 자주 권하는 나라도 드물 테니 말이다. “술 안 마신다고 직장 상사가 성질내고….” 20대 중반의 한 여자는 이처럼 무작정 술 권하는 사회에 대처하는 비결이 있었다. “먹고 죽으면 그 다음부터는 안 권해요.”
애환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안주빨만 세운다고 뭐라 그러고….” 20대 후반의 한 남자가 흥분하며 말했다. “똑같은 음식인데 왜 옆에 술만 놓으면 안주로 변해야 하냐. 우리처럼 술 못 마시는 사람에겐 술이 있든 없든 그게 음식이고 식사인데. 정말 모든 게 술 마시는 사람들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게 억울하다.” 이 남자는 술이 싫어서 대학 때 엠티 같은 것도 일절 안 갔단다. 나중에 돌아보니 이렇다 할 추억이 없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겠냐고 했다. 이처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성장 과정도 달라진다.

하지만 어쩌겠나. 사회에선 술 마시는 사람들이 주류, 酒流이자 主流이다. 술 못 마시면 비주류, 非酒流이자 非主流이다. 사회생활 하려면 술 못 마시더라도 술자리에 끼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물정도 익히고, 정보도 교환하고, 사람도 사귄다. 아까 그 친구 말이, 대학시절에 술자리를 멀리 하니까 학창시절에 추억이 없게 됐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대학 때부터 술 하나는 잘 마셨다. 主流는 아니어도, 항상 酒流였다. 그래서 술 못 마시는 이들의 애환을 잘 모르지만, 주변에 술 못 마시는 이들을 여럿 봤다. 또 그 중 몇몇을 오래도록 봐왔다. 그 관찰의 결과를 추려보면, 술 못 마시는 이들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할 것 같다. 첫째, 술을 처음부터 끝까지(20대부터 40~50대까지) 못 마시는 사람. 둘째, 20대에 술을 정말 못 마시다가 가랑비에 옷 젖듯 술이 늘어 40대 넘어 술꾼이 된 사람. 셋째,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마시다보니 술이 조금 느는 듯했는데 30~40대에 결국 탈이 나서 非主流로 돌아오고 만 사람.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이는, 나보다 나이가 열 살 가량 많은 법조인이다. 검사를 꽤 오래 했는데, 80년대 후반 내가 일간지 검찰 출입 기자를 하면서 알게 됐다. 알다시피 검사들 술 좀 많이 먹나. 특히 검사가 기자와 만났다 하면, 그 시절엔 시작부터 끝까지 주구장창 폭탄주를 마셨다. 그래서 검찰 공보관은 무엇보다 술 잘 마시는 검사를 뽑았다. 그런데 이 술 못 마시는 양반이 공보관이 됐다. 공보관이 돼선, 기자들과의 술자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럼 기자들이 봐줄까.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 아까 무주클럽의 20대 중반 여자가 말한 것처럼 그도 ‘먹고 죽었다.’ 그에게 술 먹인 기자들은 조금 뒤 119를 불러야 했다. 그 뒤론 누구도 그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그래도 난 신기했다. 술 마시지 않고, 맨 정신에, 술 취한 이들 노는 걸 보고 있으면 한심하고 재미없을 텐데, 그는 함께 술 마시고 취한 사람처럼 잘 어울렸다. 그는 원래부터 직업정신이 투철했다. 보직이 공보관이고, 그걸 잘 하려고 애쓰니까 술 마시지 않고도 그렇게 되는가보다. 언젠가부터, 공보관 그만둔 지 10년도 더 지나서, 그는 술자리에서 자청해서 위스키 한잔, 혹은 폭탄주 한잔을 마시곤 했다. 그리곤 잠시 취기를 즐기는 듯했고, 얼굴이 시뻘게져서 더 이상은 마시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아! 술을 못 마셔도 취기가 그리울 때가 있겠구나!’

두 번째 유형은 나보다 조금 늦게 언론사에 들어온 후배 언론인이다. 그는 처음 신문사에 들어왔을 때, 그러니까 20대 후반까지도 술을 전혀 못했다. 조금만 마시면 토하고, 그리곤 조금 있다가 뻗어서 잤다.
그런데 이 친구는 워낙 말이 많고 떠들기를 좋아했다. 이 소식, 저 소식 물어다가 동네방네 전하는, 수다스럽기까지 한 친구였다. 당연히 술자리에도 잘 끼었는데, 자기가 싫어하는 이들과는, 술을 못 마신다는 핑계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골라가며 마음 맞는 술자리만 다니다보니 어느덧 술이 친숙해졌는지, 언젠가 보니 소주 두 세잔, 어떨 땐 반병까지도 마시고 있었다. 40대에 들어서더니 웬걸, 자기가 먼저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기까지 했다. 술을 늦게 마시기 시작해서 간이 더 싱싱하다고 웅변하듯, 일주일에 서너 번씩 술 마시고 다니는 술꾼이 돼버렸다. 앞에 말한 법조인과는 체질이 달랐던 모양이다.



마지막 유형은 여러 명 있다. 나보다 선배인 만화가도 있고, 대학 교수하는 내 친구도 있다. 이들은 젊은 시절 남에게 지기 싫어서, 혹은 술 마시고 어울리는 그 분위기가 좋아서 악으로 깡으로 술을 마셨다. 만화가의 경우엔, 술이 느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무슨 약까지 지어먹었단다. 그래서 느는 듯했는데, 늘었다 싶은 순간 술 마시고 탈이 나고, 그게 오래 가고, 그런 식으로 한 동안 도돌이표를 돈 뒤엔 술을 멀리 하기로 작정했단다. 교수하는 내 친구는, 30대 중반에 술 마시고 피를 토하고 나선, 몸이 술을 거부하더란다.

앞에 말한 법조인이나, 교수 친구처럼 몇몇 술 못 마시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표정이 있다. 약간 냉소적인 듯하면서, 어찌 보면 호기심이 가득한 것 같기도 한, 뭐랄까, ‘저것도 재미있다고 하고 앉았나?’와 ‘저러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가 반씩 섞인 눈으로 남들을 관찰하곤 한다. 내겐 그 표정이 꽤나 지적으로 보인다. 그렇지. 나도 술 마시지 않고 차분하게 지내다보면, 그처럼 권태와 탐구가 한데 섞인, 매력적인 모습이 나오지 않겠나. 그런데 이틀이 멀다고 흥청망청 마셔대니 도무지 지적인 표정이 나오기가….

      취중진담/임범의 술과 문화  |  2011. 6. 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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