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디 가? 무슨 일 있어?”
요번 일요일에 못 볼 것 같다고 했더니 마누라처럼 현아가 캐물었다. 대학교 1학년부터 캠퍼스 커플로 지내 와서 사학년 무렵엔 다들 ‘박준영 마누라’로 부를 정도이기도 했고 고시생 남자친구에게 ‘다른 스케줄’이 있는 것은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1년도 채 다니지 않은 식품회사 동료였던 석호의 결혼식이 있다고 했다.
“어머, 진짜? 나 잠깐 얘기만 들었던 그 분. 나이도 자기랑 동갑 아냐? 가만… 그런데 어떤 여잔데?”
“나도 얼굴 못 봤어. 사귄 지 얼마 안 된 것 같던데. 여하튼 나 거기 들렸다 너한테 갈 테니까 좀 늦게 보자구.”
“아니, 뭐 그럴 거 있어? 어차피 축의금 낼 건데 그냥 우리 거기서 맛있는 밥 얻어 먹으면 되지 뭐. 돈 굳고 좋네.”
“사람들 북적북적한 데 가서 갈비탕 먹는 게 뭐가 좋냐? 됐어.”
그래도 막무가내로 현아는 나를 따라 오겠다 했다. 내가 오랜만에 자켓을 꺼내 입은 모습에 흡족해하기도 했다.
석호의 결혼식장엔 사람들로 북적북적하지도 않았고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갈비탕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말없이 조용조용 다녔으며 저마다 원형 테이블에 자리배치가 미리 되어 있었다. 우리 자리에도 <박준영님+동행1>이라는 표식이 되어 있었다. 최근 호텔에 버금가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실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프라이빗 웨딩하우스였다. 김석호의 핏기 없는 얼굴과 대충 차려입은 옷매무새를 보았을 때 집안이 재산가였음은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기 써는 분위기네.”
내가 냅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응.”
시골에서 서울 갓 올라온 순정처녀마냥 현아는 천장의 샹들리에와 흰색 꽃장식의 버진로드를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젠장, 끝날 때까지 자리에 꼼짝 말고 앉아 있어야 되겠네.”
“어.”
현아의 언동은 순간 양가집 규수의 그것으로 바뀌어져가고 있었다. 어라, 오늘 커플링도 끼고 왔네. 나는 테이블 위의 현아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자기야, 이거 테이블 위의 맥주 먼저 마셔도 되는 거야?”
현아가 손을 슬며시 빼며 내게 물었다.
“속도위반이라더라.”
그로부터 일주일 지난 장마시즌의 첫날, 현아의 원룸에서 우리는 침대에 누워 창밖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멍하니 감상하고 있었다.
“뭐가?”
“그, 왜, 김석호씨네 말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여자화장실 가서 아주머님들 수근대는 소리를 엿들었어. 참 우아하게 생기셔갖구선… 아 정확한 표현은 ‘특별혼수품을 장만했다’나 뭐라나.”
“그랬구나, 그건 나도 몰랐네. 녀석이 원래 숫기가 없으니 그런 얘기도 안 했구나.”
몸의 피곤이 덜 풀려 다시 눈을 감고 현아에게 등을 돌리며 짧은 낮잠을 청하려고 했다.
“그래도 사랑하나 보네. 도망 안 가는 걸 보니.” 현아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어깨 너머로 들렸다.
동갑여자와 사귀는 기분은 참 묘했다. 나와 같은 세대, 나와 같은 세월을 함께 관통해가는 게 분명한 데 어째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점점 격차가 커져갔다. 나는 졸업 후 군대를 다녀오고 현아는 졸업 후 영어학원 강사가 되었다. 그녀는 타고난 싹싹함과 영민함 덕에 원장과 학부형들한테 큰 인기를 끌었다. 원장은 겨우 이년 후, 현아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서울시내 외곽에 새로 만드는 3호점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른바 ‘새끼마담’ 같은 개념인데, 웬걸. 기대 이상으로 3호점은 번창을 해갔다. 워낙 외딴 지역이라 주변에 다른 경쟁자가 없었고 그 동네 엄마들은 달리 여흥거리가 없어서 오히려 아이들 교육에 올인하는 분위기였다. 가끔 현아가 일반 회사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녀는 원래부터 에너지도 넘치는 아이였는데 분명히 일반 회사를 다녔다면 남자 상사들도 이뻐했겠지만 주변에 집적거리는 남자 여럿 생겼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현아가 더 적극적으로 반응할지도 모른다. 그런 끼를 내재한 현아가 이름도 모를 동네에서 아이들과 엄마들만 상대하는 지루한 직업을 택한 것에 대해 남자 친구로서는 처음엔 내심 안도했음을 부인하진 못했다. 그런데 때로는 그 기를 다 못 펴고 사는 것 같아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내게 옮아와 부담스럽기도 했다.
“뭔가 엄마와 아이들의 기에 눌려 내 인생도 팍팍 늙어가는 기분이야. 나 고작 28살인데. 너무 재미없어. 사는 게. 이대로 매일매일 똑같이 살다가 죽을 것만 같아.”
어느덧 불평불만은 근본 원인은 같아도 해석이 달라졌다.
“글쎄, 나 벌써 28살인 거 있지?”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더 큰 한숨을 내쉬며.
변명을 하자면 평소에 내가 가지던 결혼관이라는 것은 이랬다. 남자가 번듯한 직장을 잡아 돈을 모으고 집도 사고 착실하게 준비해서 좋은 여자 만나 주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좋은 여자를 너무 일찍 만나버린 게 스케줄을 다 꼬이게 한 원흉이었을까? 뽑아주는 회사 아무 데나 들어갔더니 역시 상사라고 하는 작자들이 워낙 개차반 같아 그 꼴을 못 보고 한번 들이받는 통에 회사를 관두고 신림동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덧 내 마음 속의 결혼적령기는 35살이 되었다. 아니, 실은 점점 ‘뭐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인생 사는데 별 불편함은 없지 않을까’가 내 본심이 아닐까도 싶었다. 이렇게 내 본심이 정확히 뭔지도 스스로도 헷갈려서 짜증날 무렵, 현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말문을 꺼냈다.
“우리 술 먹으러 가자.”
“뭐?”
“술 먹으러 가자고. 나 술 먹고 싶어. 술 사줘. 술고파”
“….”
“어서.”
현아는 내 엉덩이를 손으로 찰싹 때렸다. 현아가 나를 데려간 곳은 주로 삼겹살이나 목살이 인기메뉴인 동네 고깃집이었다. 현아의 비장한 분위기상 어딘가 비싼 곳에 가서 비싼 밥을 먹어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이 보였는데 의외의 선택이었다. 대신 그 중 제일 비싼 소갈빗살을 시켰다.
현아와 술자리로 마주하는 일은 대개 뭔가 무거운 얘기를 꺼낼 때만 그렇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태연한 척 사이다를 시켰다. 나는 선천적으로 술을 거의 마시지 못했다.
“같이 마셔.” 현아는 소주잔 하나를 내 앞에 놓았다.
“지난번처럼 나 쓰러져서 네가 나 업고 가려고?”
“그러던가.”
종업원이 건네준 소주병의 뚜껑을 열고 두 개의 잔에 거칠게 부으며 그녀는 씁쓸하게 내뱉았다.
“참, 어쩌자고 술을 입에도 못 대는 남자가 이리도 좋을까.”
애주가인 현아는 내게 술잔을 부딪혀왔다. 현아는 반쯤 들이키고 잔을 테이블 위에 탁 놓았다.
“나… 지금 학원 꽤 잘 된다.”
“알지. 너 좀 유능하잖아.” 나는 양파를 쌈장에 찍어먹으며 끄덕끄덕거렸다.
“그래 솔직히 우리 대학 같은 델 나와서 28살 되서 나만큼 돈 잘 버는 여자 있음 나와보라 그래.”
피식, 그 말에 웃음이 새나왔다. 학원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히고 모아놓은 돈도 좀 되는 걸로 알고 익히 알고 있었다. 현아는 늘 뭔가 기분이 석연치 않을 때 자기가 얼마나 또래들에 비해 많이 버는지를 강조해야 직성이 풀렸으니까. 그럴 때마다 난 이 나이 되도록 부모한테 용돈 받아쓰는 한심한 백수임을 또 한번 자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걸로 일단 시작하면 될 것 같다구.”
우리가 ‘결혼’이라는 단어를 두 사람 입에 가장 많이 올렸던 때는 내가 군대 가기 전의 대학교 4학년 때였다. 마치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사람들처럼, 우리 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거야,라며 굳게 맹세를 했고 처음 수줍게 ‘결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우리는 뜨겁게 환희의 절정을 함께 맛보았었다. 그 때 어쩌면 이미 관계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하게 되면 네가 분명히 행복하지 않을 거야.”
이런 상황, 즉 ‘내’ 상황 말이다. 그리고 ‘너’가 아닌 ‘내’가 행복하지 않을 거야,가 정직할 것이다.
“나는 네가 무슨 얘기를 하든 이젠 그냥 그 모든 얘기들이 나랑 결혼하기 싫다는 표현으로만 들리는데… 어떡하지?”
현아가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남은 잔을 일제히 들이켰다. 때마침 종업원이 갈빗살 2인분 접시와 숯불을 낑낑대며 가지고 왔다. 확 테이블에 불이 오르자 현아의 얼굴도 덩달아 벌개져갔다. 언뜻 그것은 화난 암사자의 모습 같았다. 그리고는 그 모습 그대로 이내 남편이 주는 실망에 익숙하게 체념한 마누라처럼 현아는 척척 고기들을 불 판 위에 올려놓고 힘차게 굽기 시작했다.
“일단 먹자. 일단 먹자고”
그녀의 빈 잔을 지금 가득 따라주는 것 말고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난 현아의 빈 잔을 늘 한 템포 늦게 알아차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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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다면 긴 세월동안 나와 함께 했던 변덕쟁이 부인이 있었으니 바로 ‘맥주부인’이다. 먼저 맥주부인 얘길 하기 위해서 잠깐 나의 음주 생활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내게는 술 때문에 붙여진 몇 개의 별명이 있었다.
‘음주작가’ 일주일 7일 중 5일은 술을 마시던 내가 평균 세 개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으니 대부분의 대본을 술을 마신 상태에서 썼다고 생각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간혹 의심 많은 몇몇의 인간들이 날더러 집필 작가를 따로 집에 가둬두고 대본을 쓰게 시키고 난 술만 마시러 다니는 음주작가 아니냐고 의심을 한데서 나온 별명이었으니 기가 막히다 참.
‘낮술작가’ 처음 코미디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신인 작가였던 내게 그 기 센 개그맨들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인기코너의 인기 개그맨들이다보니 하찮은(?) 신인 작가인 내 의견은 항상 뒷전이고 자기들의 아이디어만을 내세우기일쑤였다. 결국 난 회의실 한구석에서 혼자 씩씩대며 앉아 있다 집에 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미 대학방송국 시절부터 소문난 한 성질로 후배들에게 얼차렷을 밥 먹듯 시켰던 난 그렇게 기죽어 앉아 있을만한 순둥이는 아니었다. 어느 날 난 회의도중 참지 못하고 밖에 나가버렸고, 조용히 소주 한 병을 깡소주로 마시고 돌아왔다. 술만 마시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내 체질상 내 얼굴은 이미 홍당무였고 온몸에서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날 보고 다들 말을 잊은 듯 했다. 결국 에미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 덕분에 난 그들 앞에서 할 말 다하고 내 뜻대로 대본을 만들 수 있었지만 그 뒤로 난 이름대신 ‘낮술’로 불리었다.
‘끝장작가’ 성격상 뭐든지 끝을 보는 성격 탓에 오후 네다섯시면 시작되는 술자리는 새벽 네다섯시가 되어야만 끝이 났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끝장을 볼 때까지 마셔야만 속이 후련해지는 이 나쁜 음주 습관 때문에 참 웃지 못할 일도 많았었다. 모범택시가 처음 나온 날, 기사님이 금이야 옥이야 꾸며서 몰고 나온 택시 안에 첫손님이던 내가 시원하게 구토 장식을 해드려서 기사님의 얼굴을 흙빛으로 만들어 드렸던 일, 완전 꽐라가 돼서 택시 탄다고 눈을 택시 문앞에 대고 문을 열어서 눈탱이 밤탱이 되어서 본의 아니게 눈화장 짙게 하고 다녔던 일, 무엇보다 미안한건 새벽마다 여의도로 강남으로 취한 각시 찾으러 다니느라 고생했던 울 신랑의 모험담까지.
이정도의 닉네임이면 내가 작가생활동안 얼마나 많은 술자리와 유흥문화를 즐겼는지 감히 짐작이 될 것이고, 오늘의 본론은 그 엄청난 술자리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았던 맥주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먼저 왜 맥주 아가씨가 아니고 맥주 부인일까 하는 분들에게 맥주부인을 잠깐 소개할까 한다. 대학 때 소주로 술을 배워서인지 이상하게 난 맥주를 마시지 못했다. 소주는 밤새 마실 수 있었지만 맥주는 500cc만 마셔도 취하는 이상한 현상이 있어서 난 아예 맥주를 입에 잘 대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로 만나게 된 술이 일명, 폭탄주였다. 양주잔을 곱게 품안에 폭~ 싸안고 수줍게 앉아있는 맥주부인.
물론 처음엔 오랫동안 겁내했던 맥주부인인지라 감히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 순간 양주군을 품에 안은 맥주부인이 온몸을 유혹적으로 흔들어댔다. 그러곤 하얀 겉옷마저 벗어서 천정에 던져 붙이더니 양주군에 대한 그 사랑의 열정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 유혹에 넘어가 온몸을 맥주부인에게 내줘버린 양주군에게 동화되듯 난 양주군을 품은 맥주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첫잔의 그 느낌을 난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나 목 타고 넘어가요~ 이제 식도 타고 내려가요~ 나 위장에 도착 했어요’
빈속을 정확하게 훑어 내려가는 그 알싸~한 느낌, 그리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느껴지는 짜릿한 전율. ‘그래, 이 맛이야~’
그렇게 난 양주군을 품은 맥주부인에게 중독되어 갔고 그들의 사랑과 열정을 받아 대본들을 자판기로 찍어내듯 써내곤 했었다. 양주군을 품은 맥주부인들과 함께 썼던 그 대본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게 <테마게임>과 <울엄마>부터 시작해서 <귀곡산장> <여자 대 여자> <남자셋 여자셋> 등등. 그 다양한 프로그램만큼이나 맥주부인의 사랑행위도 다양했었다. 때론 양주군을 곱게 품었다가 그 사랑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지면 활활 타올라 ‘화주’가 되었고, 양주군의 사랑이 식을 듯 약해지면 망설임 없이 ‘충성주’를 바쳤고, 양주군과의 사랑싸움이 심할때는 맥주부인이 입에 거품을 물어 ‘원자 폭탄주’가 되었고, 삐진 맥주부인을 달래주려 양주군이 맥주부인의 옆구리를 푹 찔러댈 땐 ‘수류탄주’가 되었다. 이 중 최고의 뜨거운 사랑을 꼽자면 난 ‘수류탄주’라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맥주부인의 옆구리를 쿡 찌른 양주군이 그 옆구리로 사정없이 돌진한 후 맥주부인의 뚜껑이 열리는 순가 뿜어져 나오는 그들의 지독한 사랑에는 아마 슈렉도 버티진 못하리라. 나도 수류탄 주에는 가볍게 녹다운 됐었으니. 아,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 변화무쌍하고도 열정적인 맥주부인의 사랑 덕에 내 작가 생활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꼽는 <테마게임>의 회의는 아예 방송국 대신 술집에서 주로 이루어졌었다.
술집 문을 여는 오후 4시 반까지 우린 회의실에서 신통한 아이디어 하나 없이 시체처럼 축 쳐져 있곤 했었다. 그러다가 술집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쌩쌩해져 사랑에 빠진 맥주부인과 함께 가열찬 음주 회의를 시작한다.
그렇게 가열찬 회의를 마치고 새벽이 돼서야 집에 돌아온 난 이미 다양한 맥주부인에 취해 있게 되고 그 상태로 음주집필을 해놓고 아침 해가 훤히 떠오른 걸 확인하고는 잠이 들곤 했었다. 그렇게 양주군과 사랑에 빠진 맥주부인 덕에 집필한 대본들이 시청률 30%가 넘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사랑받고 수많은 유행어들을 낳다 못해 방송작가상까지 받게 해준 걸 보면 맥주부인의 그 사랑이 참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양주군을 사랑했던 맥주부인이 어느 날 바람이 나버렸다. 양주군 대신 소주군을 품에 안은 것이다. 그 사건은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나 버렸다. 그냥 너무 더워서 모두들 맥주나 한잔 하겠다고 호프집에 갔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양주군 없는 맥주부인은 참 김빠져 보였고 외로워 보여서 우두커니 그냥 바라보고 있는데 내 앞에 있던 소주군이 방심해 있는 맥주부인 품으로 순식간에 몸을 던졌다. 난 버럭 화를 냈다.
‘맥주부인은 이미 사랑하는 양주군이 있는데 소주군 너 미친 거 아냐?’
그런데 정작 맥주부인의 반응이 이상했다. 나보다 더 화를 내야할 맥주부인이 조용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예의 그 유혹의 몸부림을 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맥주부인의 반응에 놀란 내게 맥주부인은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은 움직이는거야!’
그렇게 기꺼이 소주군을 품은 맥주부인은 일명, 소맥으로 다시 사랑에 빠졌다. 소주군을 품은 맥주부인의 사랑은 훨씬 부드러웠다. 양주군과의 사랑이 젊은 날의 알싸한 열정이었다면 소주군과의 사랑은 부드럽지만 끈끈한 정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소주군과 바람난 맥주부인의 충격으로 나도 역시 살짝 외도를 시도했다. 코미디 작가, 대본 작가라는 내 영역에서 살짝 벗어나 쇼, 버라이어티 구성 작가에 도전해 본 것이다. 토크쇼도 해보고 퀴즈쇼도 해보고 음악쇼도 해봤다. 그 중 가장 신났던 건 음악쇼로의 외도였다.
이정현이 ‘와’라는 노래를 들고 가수로 처음 나왔던 그 해, 내가 했던 음악캠프라는 쇼프로그램에서 이정현을 쇠바구니에 태워 등장 시키다가 로프가 흔들려 위험했던 적도 있었고, 매번 클로징 무대를 장식했었던 HOT를 오프닝 무대에 세웠다가 노래가 끝난 HOT와 함께 방청객들이 다 나가버려서 썰렁한 생방송을 한 적도 있었다. 내가 코미디를 외면하고 다른 프로그램들과 외도하며 그렇게 신나있는 동안 맥주부인 또한 이젠 거칠 거 없는 바람의 달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모든 일이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부터는 용감해지기 마련이듯 맥주부인의 바람 역시 양주군을 버리고 소주군을 품을 때의 수줍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쌀쌀맞은 소주군 대신 달콤한 콜라군을 끌어 들여 ‘고진감래주’를 만들었고, 맥주부인을 못 잊어 찾아온 옛 애인 양주군의 순정도 외면한 채 복분자군을 불러들여 삼각관계를 만든 ‘삼색주’, 아예 포도 오렌지 콜라군들을 몽땅 한곳에 모은 ‘무지개주’로 모두를 현혹 시켰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고 길이 아닌 곳 끝에는 꼭 벼랑이 있기 마련이었다.
맥주부인의 마음이 진심이 아니란 걸 깨달은 그들 역시 맥주부인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진심이 아닌 그들의 마음에 상심한 맥주 부인은 모든 걸 버리고 사라져 버렸다. 맥주부인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맥주부인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질 무렵, 맥주 부인이 돌아왔다. 돌아온 맥주부인을 보고 사람들은 기대감과 함께 수군거렸다. 하지만 맥주부인은 이제 더 이상 아무도 품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냥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모두들 반신반의했다. 그 큰 열정과 욕심을 가진 맥주부인이 과연 조용히 초심으로 돌아가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투명하고 시원해 보이는 유리잔 안에 차분하게 담긴 맥주부인은 더 이상 누구를 품지 않아도 그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빛나고 가득차 보였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말했다. 맥주부인이야말로 진정한 바람의 종결자라고. 다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가장 빛나는 맥주부인이야말로 진짜 바람의 달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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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PD? 그때까지는 그러한 직업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나에게 ‘방송국 PD’는 낙인처럼 뇌리에 박혀 버렸다. 무조건 조용필을 만나 방송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방송국 PD의 꿈은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가서도 계속 남았다. 친구들과 소주 한 잔 들이키면서도 조용필 얘기를 하며 PD가 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오랫동안 그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어느 순간부터 ‘오 PD'하면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질 않았다.
방송국 PD가 되기 위해 방송국의 문을 두드렸지만, 매번 면접에서 떨어지는 좌절을 겪었다. 몇 번의 좌절은 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운명은 다른 곳에서 열렸다. 우연찮게 ‘방송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방송이란 분야가 워낙 다양해서 그 속에서 나의 영웅이었던 ‘조용필’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쇼프로그램을 해야 조용필을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코미디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작가의 길을 걷고 있던 어느 날, 방송국의 국장과 함께하는 제작팀의 회식자리가 열렸다.
소주와 맥주, 그리고 폭탄주가 오가던 그때, 장기자랑 시간이 되어 조용필의 노래를 멋지게 부르던 나에게 국장이 한마디 건넨다.
“오작가, 노래 잘 하는데. 음악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쇼 프로그램 맡아 볼래?” 그 말 한마디에 술이 확 깼다. “그럼요! 제가 사실 조용필 씨 때문에 방송국 들어왔습니다. 열심히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매주 한 명씩 당시 최고의 가수를 데리고 한 시간짜리 음악과 토크가 있는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맡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났을 때, 국장님이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오작가~ 조용필 씨 좋아한다고 했지? 내일 조용필 씨 하고 약속을 했으니까 집으로 찾아가 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어린시절 나의 영웅을 만나게 되다니!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조용필 씨요?”, “그래, 이번에 조용필 씨 어렵게 섭외했어. 자네가 조용필씨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LP판도 다 갖고 있다고 했잖아. 잘 만들어 봐.” 그날 밤 나는 담당 PD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그때 마신 소주는 정말 최고로 달콤한 맛이었다.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방배동 조용필 씨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드디어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오던 그 영웅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영웅에게 두 개의 큐시트를 보여주었다. 하나는 그동안 방송에서 많이 보여주었던 것으로 짠 방송용 큐시트였고, 또 하나는 그동안 방송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조용필의 음악으로만 꽉 찬, 즉 나의 영웅을 위한 큐시트였다. 두 개의 큐시트 중 나머지 한 장을 본 영웅이 갑자기 쳐다보며 “나에 대해서 많이 아는구나. 그런데 나도 이걸 하고 싶은데 방송에서는 참 힘들지. 일단 첫 번째 거로 가자!” 사실 그때 나에게는 첫 번째이건 두 번째 큐시트이건 상관이 없었다. 왜냐면 나의 영웅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녹화 당일이 되었다. 오후 6시에 녹화가 시작될 예정인데, 점심부터 녹화장은 위대한 탄생의 연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곳에 바로 영웅이 와 있었으며 무려 6시간의 리허설이 이어졌다. 녹화가 시작되고 2시간동안 영웅의 주옥같은 노래가 스튜디오를 꽉 채웠다.
녹화가 끝난 후,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웠던 영웅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해야 할 그 순간, “녹화도 잘 끝났는데, 그냥 갈 거야? 술 한잔 해야지!” 담당 PD와 나는 영웅과 함께 그의 집 근처인 방배동의 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여기 소주 두 병하고, 안주는 알죠?” 평소 잘 오던 술집이어선지 주인은 소주 두 병을 갖다 주었고, 그때부터 남자들만의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난 술 중에서 바로 이 투명한 소주를 좋아해. 무엇보다 깨끗하잖아. 특히 녹화나 공연 끝나고 마시는 소주는 정말 맛이 있지.” 그때 나도 한마디 했다. “선생님, 사실 제 몸에는 소주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그때 한 소주 회사의 광고 카피의 ‘진로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인용한 농이었다.
이 말에 기분이 좋았던지 소주잔이 주거니 받거니 지나갔다. 그리고 몇 잔의 소주를 들이켰을 때, 조용필 씨가 말했다.
“오작가야, 나한테 선생님 소리 하지 마. 형이라고 해!”, “네? 형님이요?”, “그래. 선생님 하면 내가 너무 늙어 보여. 형이라고 해. 소주 맛도 더 좋아지잖아.” 영웅과의 만남도 만남이었지만, 소주로 인해 그 영웅을 형님이라 부를 수 있다니 정말 그때처럼 소주가 사랑스럽고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
남자 셋이 마시다 보니 어느덧 소주 4~5명이 자리에 쌓이고 영웅도 우리도 술기운이 돌던그때, “오작가야,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더하자!”라고 영웅이 한마디 또 던졌다. 정말 꿈속을 거니는 순간이었다.
자리를 옮겨 영웅의 집에서 다시 술자리가 벌어졌다. 술자리는 영웅이 음악을 만드는 방에서 이루어졌다.
“난 여기가 참 편해.”하면서 비틀즈 음반을 보여주며 “비틀즈 음악은 언제 들어도 참 좋아.”하면서 자신의 음악보다는 비틀즈 음악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부인 안진현 씨와 비틀즈 음악에 맞춰 부르스도 함께 추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의 집을 나선 시간은 새벽 2시경, 거나하게 취했지만 나는 기쁨에 취해 오늘 밤은 이렇게 잠들 수가 없었다. 영웅 형님과 소주잔을 기울인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장PD, 우리 소주 한잔 더 하고 가자!! 투명한 소주 맛을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라고 말하며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1995년 봄날, 소주 한 잔으로 영웅을 형님으로 불렀던 그때의 소주 맛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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