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과 유진은 5년 전 처음 만났다. 학교에서 각 학과의 성적 우등생을 뽑아 런던으로 한 달 여정으로 연수를 보내주었는데 그가 치대 대표로, 그녀가 의대 대표로 뽑혔던 것이다. 그 당시 민석은 일본인 여자 친구와 혹독한 이별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유진의 나이 스물 한 살, 민석의 나이 서른 한 살 때 일이다.
‘그래. 언젠가 네가 이 말을 해올 줄 알았어. 이제 때가 된 거겠지.’라고 민석은 간단하고도 명확한 답 메일을 보내왔다. 헤어지자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지 이틀 만에 온 답장이었다. 예상보다 너무 빨랐고, 너무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유진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메일함을 닫지도 않고 겉옷도 입지 않은 채 쌀쌀한 밤거리를 나와 걷다보니 어느 새 자신의 발길이 ‘한 잔’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별 통보에 애인이 선뜻 그러겠노라고,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것은 아무리 헤어짐을 원했던 사람에게도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바람에 대책 없이 쓸려 다니는 쓰레기들이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아 유진은 목울대가 아팠다. 하지만 울지 않으려고 애써 침을 삼켰고, 이런 상황에 갈 곳이 ‘한 잔’밖에 없다는 사실이 허망스럽기도 했지만 어쩐지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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