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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신화와 디플레이션의 그림자 반값 등록금 문제로 세상이 한창 시끌벅적하다. 정치권에서 논의가 한창이지만,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표몰이일 뿐 좋은 해법을 애당초 기대난망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육은 신분상승의 상징이었고, 그로서 전 국민이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싶어 했다. 결과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조건 대학 진학을 희망하자, 대학들은 쾌재를 외치며 등록금을 한 없이 올렸고, 그 바람에 우리 대학의 등록금은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졌다.

아무리 비싼들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고 출세의 사다리를 오를 수만 있다면 그 또한 별 문제가 없다는 국민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청년 백수 시대가 도래했고, 시간이 지나자 희망 없음을 감지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제 더 이상 비싼 등록금을 견딜 수 없다고 들고 일어섰다. 이에 다시 정치권은 국가재정이야 어찌 되든 일단 표부터 받아먹자는 식으로 불을 지피며 나서고 있다. 사악한 정치인들이라 말해도 무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정치인들만 욕을 먹을 일도 아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 되었던 것일까?

대한민국 사람들은 1960년대 세계 최빈국의 나락에서 일어서고 또 줄기차게 성장하고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당장 눈앞의 일이 어려워도 참고 인내하면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과는 무조건 성공이다 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게 지나친 것도 결코 아니다.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한 자가 그렇지 않았던 자보다 분명 더 큰 성취와 성공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면 된다는 믿음, 어쨌거나 밀어붙이면 성공한다는 생각, 이런 것이 바로 성공 신화라 하겠다.
그런데 그 성공신화는 이미 2000 년대 초반부터 구조적으로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분명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 성장의 한계였다. 세상만물은 뻗어가기도 하지만 어느 때에 이르면 움츠리고 거두기도 하는 법이니 이것이 더 자연스런 리듬인 것이다.

- 1997년 외환위기, 저성장 시대의 도래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가 남긴 근원적 메시지는 우리가 고속성장 시대가 끝나고 저성장 사회로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차입경영으로 무한의 고속 성장을 믿었던 기업들은 모조리 도태되었으니 저성장 시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정서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장차 처하게 될 어려움을 대학진학은 물론 그 이상의 고등교육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것은 분명 강인한 도전정신이었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나서지 않을 때만이 통하는 것이지 모두가 더 높은 교육수준으로 해결하고자 나서는 국면에서 그것은 분명 최악의 선택이었다. 모두가 성공신화를 가지고 있고, 하면 된다는 강인한 정신을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보여줄 수밖에 없는 모순이고 역설이었다.

-10년, 크게 한 박자 늦은 대학진학의 열기

저성장 시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로 성장 사회로 들어선 것이 2000년 초반이었지만, 고속 성장 시대에서 투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고등교육에 대한 의지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뒤늦은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초반 저성장 시대가 시작되었다면 고등교육 역시 그로부터 점차 감쇄되기 시작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강인한 도전정신으로 단련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그런 요구는 너무나도 가혹한 주문이었을 것이다.





-2010년, 드리워진 디플레이션의 그림자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론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미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지 오래인 미국이 그간 금융과 차입으로 경제를 운영해왔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금융을 통한 인플레이션 경영의 한계에 봉착한 것이 미국 금융위기였음이다.
물론 미국은 아직도 여전히 돈을 찍어서 푸는 양적완화를 한 번 더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두 번에 걸친 양적완화를 놓고 볼 때 그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미국이 직면한 것은 이제 저성장 시대마저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냉엄한 현실이다.
미국의 대안으로서 중국을 기대해보는 자가 많지만, 중국 경제 역시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이머징 마켓 이상을 기대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 일본과 유럽 역시 사정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 경제 전체가 한 단계 커다란 구조조정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디플레이션 기조하의 국가간 경쟁

우리 경제는 이미 저성장 경제이고 그나마 버팀목이던 미국 경제가 저 모양이다. 중국 시장을 기대해보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은 우리와 모든 산업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대기업들은 조금의 기술적 리드를 살려 중국시장에서의 입지를 지켜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고용과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몹시 미미할 것이다. 반면 중국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내주어야 할 부문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니 그로인한 후유증이 더 두려운 현실이다.

-이제는 버려야 할 성공신화

성공에 대한 믿음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적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한 상태에서 성공에 대한 맹신을 계속 이어간다면 그것은 최악의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 하우스 푸어 등 이런 현상이 바로 성공에 대한 맹신이 불러들인 부작용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경고 메시지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 더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발단일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기대치를 낮추어야 할 것이다. 디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현실로서 고착이 된다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전히 미국의 침체는 세계 경제의 침체라는 등식이 유효한 세상에서, 지금이라도 각자의 기대치를 좀 더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두고 패배주의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계 경제가 새로운 활력을 되찾을 때까지의 기간은 최소한 15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본다. 그러니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풍경/호호당의 세상만사  |  2011. 7. 6. 18:46




가장 맛있었던, 한 잔의 추억 확실히 금기 또는 억압과 욕망은 서로 끌리는 데가 있는 모양이다. 뭘 못 하게 하면 더 하고 싶고, 못 먹게 하면 더 먹고 싶고, 그렇게 먹으면 더 맛있고…. 술도 그런가? 그동안 정말 맛있게 술 마셨던 때가 언제였더라? 안주, 분위기 같은 다른 요소들 다 빼고 순수한 술의 맛에 내 오감이 사로잡혔던 때가 언제 언제였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주 오래 전 일밖에 생각나질 않는다. 나이 들다 보니 좋은 술에, 좋은 안주 시켜놓고 여유롭게 마실 기회가 잦아진다. 그럴 때도 술자리가 즐거웠다는 생각은 나도, 특별히 술 맛이 좋았다는 기억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보다 마시면 안 되는 상황에서 몰래 마실 때, 혹은 술과 안주 모두 조금 아쉽고 모자란 상태에서 마실 때, 그때 술 맛이 좋았던 것 아닐까.

며칠 전 오랜 친구와 밤늦게 만나 차 한 잔만 하고 들어가려는데, 배가 출출했다. 저녁도 먹었는데, 식사를 하긴 그렇고….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포장마차 가서 소주 딱 한 잔만 하고 가자’는 말이 나왔다. 그 친구는 채식을 했다. 포장마차엔 그가 먹을 안주가 없었다. 그러니 안주를 많이 시키기도 그렇고 해서 닭 모래집 구이 한 접시를 시키고, 기본안주로 나오는 오이를 많이 달라고 했다. 닭 모래집 구이가 나오기 전에 오이를 안주삼아 소주 두 세잔을 마시니까 술기운이 확 올라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그래, 술 맛이 바로 이런 거였지!’ 조금 빈속에, 알코올과 약간의 안주와 허기를 달랠 때, 그때 술 맛이 진짜…, 카! 갑자기 머릿속에 25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맥주잔에 소주 채워 원샷 하고 뛰어!

나는 군 생활을 1980년대 중반에 서울 근교에서 했다. 군부대의 출입문이 대여섯 곳 됐는데, 그 중 두 곳은 밖에 나가면 바로 주택가였다. 내가 경비중대였으니, 병장 땐 초소를 지키는 위병들이 모두 내 부하였다. 입대 동기 중에 막노동을 오래 하다 와서 몸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나보다 두 살 적었고, 떡 벌어진 체구에 비해 키가 작았다. 항상 과묵하게 솔선수범해서 일하고, 후배들을 괴롭히는 일도 전혀 없던 이였다. 한 잔 같이 하면, 말을 별로 하지 않아도 술이 맛있어지는, 그런 친구였다.

나와 내무반이 달랐는데, 하루는 밤 12시가 조금 넘어서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났다. 갑자기 둘 사이에 전기가 통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둘 중 하나가 손으로 소주 잔 꺾는 흉내를 냈고, 다른 하나는 좋다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둘은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나와선 다른 사람 못 보게 사주경계 해가며 밤길을 달려 주택가로 향해 나있는 초소를 나갔다. 후배인 위병은 “잘 다녀오십쇼!”라며 경례를 했다. 잠깐 동안의 탈영! 초소 밖 500미터 지점에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다. 1천원 내고 소주 한 병과 닭 발 두 쪽을 시켰다.

소주 한 병을 맥주잔에 따르면 두 잔 가득 나온다. 시간이 없다. 각자 한 잔씩 잡고서 그대로 원 샷! 그리곤 닭 발 한 개씩 입에 물고서 다시 열심히 뛰어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침상에 누우면 그제야 취기가 확 오르면서 천정이 빙 돌았다.

그 기분을 뭐라고 말할까. 세상이 평온한 기운으로 꽉 차 넘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술을 꼽으라면, 바로 그 때 맥주잔에 따라 원 샷 했던 그 소주다. 그 뒤로도 그 친구와 함께 한 달에 한번 꼴로 두세 차례 더 ‘야간 포장마차 왕복 달리기’를 했다. 그 친구는 지금 뭘 할까….

둘이서 보드카 1리터를 스트레이트로…

비슷한 추억이 하나 더 있다. 10년쯤 지나, 1990년대 중반에 내가 신문사 검찰출입 기자를 할 때였다. 마침 검찰이 큰 사건을 수사 중이어서 기자들은 한 달 가까이 밤샘 취재를 하고 있었다. 검사들은 수사하기 바쁜데, 검찰청에 있다고 해서 취재되는 게 뭐가 있었나. 밤샘 취재라는 게 대부분이, 혹시 무슨 일 있을까 싶어 조간신문 마감시간(새벽 2~3시)까지 검찰 기자실에서 대기하는 거였다. 시간의 객체로 버티는 것, 그게 왜 그렇게 싫던지….
밤 열시쯤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인생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무작정 그 곳(검찰청)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일종의 탈영인 셈이었다. 자리를 비우려면 타 신문사 기자에게라도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달라’는 부탁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검찰청을 나와서, 인사동 내 단골 카페로 향했다. 가면서 택시 안에서 다른 부서에 있는 후배 기자 한 명을 불러냈다. 카페에서 만나, 1리터짜리 보드카 한 병을 시켰다. 그 후배도 술을 잘 마셨다. 말이 많지 않음에도 함께 있으면 술 맛이 나는, 그런 이였다.
40도짜리 보드카 한 병을 둘이 그날 밤 스트레이트로 다 비웠다. 짜릿한 목 넘김의 맛이 무척 좋았던 것 같다. 특별한 안주도 없었다. 멸치와 땅콩 정도? 다음날 팔 다리에 힘이 없어서 혼났지만, 왠지 그 날의 술 맛이 그 뒤에도 자꾸 생각났다. 그 후배와 다시 그 카페에 가서 똑같은 1리터짜리 보드카를 시켜 스트레이트로 마셔봤다. 한 병은커녕 반병도 못 마시고 말았다. 탈영자의 죄의식, 또는 해방감이 없어서였나보다. 역시 억압이, 구속이 있어야 술 맛이 살아나는 걸까.

억압, 아쉬움, 절제가 술 맛의 비밀!

내가 술을 자주 마셔서 새삼 술 맛을 느낄 겨를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 일주일만 참았다가 술을 마셔도, 그 맛이 싱싱하게 살아날 텐데. 그런 기억 있다.

15년쯤 전에,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수치가 지나치게 높게 나와 한동안 술을 안 마신 적이 있다. 술자리 가선, 맥주 대신 무알콜 맥아음료를 시켜 먹으면서 한 달을 참았다. 그랬더니 수치가 어지간히 내려가서 식구들과 점심 먹으면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한 달 만에! 말 그대로 황홀했다. ‘내가 이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단 말이야?’

그 뒤로 외국에서 유명 브랜드 맥주, 수제 맥주 등등 맛있는 맥주들을 많이 마셔봤지만 그 ‘한 달 만의 맥주’ 맛에는 못 미쳤다. 그냥 흔한 국산 맥주였는데 말이다.

그러니 정말 좋은 건, 귀해서가 아니라 맛을 위해서라도 아껴 먹어야 하는가 보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일주일만 술을 참아봐? 7일 뒤의 술 맛을 위해, 6일을 인내해 봐? 아~~. 어쨌거나 확실한 건, 술을 남용하면 술자리까진 즐거울 수 있어도 술 맛을 제대로 느끼긴 힘들다는 거다.

필자소개 임범님은 

원문 보기 : http://webzine.hite-jinro.com/2011/07/hot/hot_1.asp?Depth1=2&Depth2=1
      취중진담/임범의 술과 문화  |  2011. 7. 6. 18:44




맥주부인 바람났네        어렸을 적부터 막연히 방송국에서 일을 하겠다는 꿈을 꾸곤 했던 내가 작가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22년이 돼간다. 그러다보니 어디 가서 경력이라도 적어 낼라치면 손댔던 프로그램만 적으려 해도<병팔이랑 갑경이랑><은장도의 한><테마게임><울엄마><이휘재의 인생극장><남자셋 여자셋><여자 대 여자> 등. A4 용지 한 두장으로는 어림 없는(?) 작가가 돼 버린 것이다.
맥주부인과 함께 탄생한 MBC 일일 시트콤‘남자셋 여자셋’

이 길다면 긴 세월동안 나와 함께 했던 변덕쟁이 부인이 있었으니 바로 ‘맥주부인’이다. 먼저 맥주부인 얘길 하기 위해서 잠깐 나의 음주 생활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내게는 술 때문에 붙여진 몇 개의 별명이 있었다.
‘음주작가’ 일주일 7일 중 5일은 술을 마시던 내가 평균 세 개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으니 대부분의 대본을 술을 마신 상태에서 썼다고 생각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간혹 의심 많은 몇몇의 인간들이 날더러 집필 작가를 따로 집에 가둬두고 대본을 쓰게 시키고 난 술만 마시러 다니는 음주작가 아니냐고 의심을 한데서 나온 별명이었으니 기가 막히다 참.

‘낮술작가’ 처음 코미디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신인 작가였던 내게 그 기 센 개그맨들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인기코너의 인기 개그맨들이다보니 하찮은(?) 신인 작가인 내 의견은 항상 뒷전이고 자기들의 아이디어만을 내세우기일쑤였다. 결국 난 회의실 한구석에서 혼자 씩씩대며 앉아 있다 집에 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미 대학방송국 시절부터 소문난 한 성질로 후배들에게 얼차렷을 밥 먹듯 시켰던 난 그렇게 기죽어 앉아 있을만한 순둥이는 아니었다. 어느 날 난 회의도중 참지 못하고 밖에 나가버렸고, 조용히 소주 한 병을 깡소주로 마시고 돌아왔다. 술만 마시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내 체질상 내 얼굴은 이미 홍당무였고 온몸에서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날 보고 다들 말을 잊은 듯 했다. 결국 에미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 덕분에 난 그들 앞에서 할 말 다하고 내 뜻대로 대본을 만들 수 있었지만 그 뒤로 난 이름대신 ‘낮술’로 불리었다.

‘끝장작가’ 성격상 뭐든지 끝을 보는 성격 탓에 오후 네다섯시면 시작되는 술자리는 새벽 네다섯시가 되어야만 끝이 났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끝장을 볼 때까지 마셔야만 속이 후련해지는 이 나쁜 음주 습관 때문에 참 웃지 못할 일도 많았었다. 모범택시가 처음 나온 날, 기사님이 금이야 옥이야 꾸며서 몰고 나온 택시 안에 첫손님이던 내가 시원하게 구토 장식을 해드려서 기사님의 얼굴을 흙빛으로 만들어 드렸던 일, 완전 꽐라가 돼서 택시 탄다고 눈을 택시 문앞에 대고 문을 열어서 눈탱이 밤탱이 되어서 본의 아니게 눈화장 짙게 하고 다녔던 일, 무엇보다 미안한건 새벽마다 여의도로 강남으로 취한 각시 찾으러 다니느라 고생했던 울 신랑의 모험담까지.
이정도의 닉네임이면 내가 작가생활동안 얼마나 많은 술자리와 유흥문화를 즐겼는지 감히 짐작이 될 것이고, 오늘의 본론은 그 엄청난 술자리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았던 맥주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먼저 왜 맥주 아가씨가 아니고 맥주 부인일까 하는 분들에게 맥주부인을 잠깐 소개할까 한다. 대학 때 소주로 술을 배워서인지 이상하게 난 맥주를 마시지 못했다. 소주는 밤새 마실 수 있었지만 맥주는 500cc만 마셔도 취하는 이상한 현상이 있어서 난 아예 맥주를 입에 잘 대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로 만나게 된 술이 일명, 폭탄주였다. 양주잔을 곱게 품안에 폭~ 싸안고 수줍게 앉아있는 맥주부인.
물론 처음엔 오랫동안 겁내했던 맥주부인인지라 감히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 순간 양주군을 품에 안은 맥주부인이 온몸을 유혹적으로 흔들어댔다. 그러곤 하얀 겉옷마저 벗어서 천정에 던져 붙이더니 양주군에 대한 그 사랑의 열정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 유혹에 넘어가 온몸을 맥주부인에게 내줘버린 양주군에게 동화되듯 난 양주군을 품은 맥주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첫잔의 그 느낌을 난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나 목 타고 넘어가요~ 이제 식도 타고 내려가요~ 나 위장에 도착 했어요’
빈속을 정확하게 훑어 내려가는 그 알싸~한 느낌, 그리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느껴지는 짜릿한 전율. ‘그래, 이 맛이야~’

그렇게 난 양주군을 품은 맥주부인에게 중독되어 갔고 그들의 사랑과 열정을 받아 대본들을 자판기로 찍어내듯 써내곤 했었다. 양주군을 품은 맥주부인들과 함께 썼던 그 대본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게 <테마게임>과 <울엄마>부터 시작해서 <귀곡산장> <여자 대 여자> <남자셋 여자셋> 등등. 그 다양한 프로그램만큼이나 맥주부인의 사랑행위도 다양했었다. 때론 양주군을 곱게 품었다가 그 사랑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지면 활활 타올라 ‘화주’가 되었고, 양주군의 사랑이 식을 듯 약해지면 망설임 없이 ‘충성주’를 바쳤고, 양주군과의 사랑싸움이 심할때는 맥주부인이 입에 거품을 물어 ‘원자 폭탄주’가 되었고, 삐진 맥주부인을 달래주려 양주군이 맥주부인의 옆구리를 푹 찔러댈 땐 ‘수류탄주’가 되었다. 이 중 최고의 뜨거운 사랑을 꼽자면 난 ‘수류탄주’라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맥주부인의 옆구리를 쿡 찌른 양주군이 그 옆구리로 사정없이 돌진한 후 맥주부인의 뚜껑이 열리는 순가 뿜어져 나오는 그들의 지독한 사랑에는 아마 슈렉도 버티진 못하리라. 나도 수류탄 주에는 가볍게 녹다운 됐었으니. 아,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음주작가가 사랑한 투명하고 시원한 맥주

그 변화무쌍하고도 열정적인 맥주부인의 사랑 덕에 내 작가 생활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꼽는 <테마게임>의 회의는 아예 방송국 대신 술집에서 주로 이루어졌었다.
술집 문을 여는 오후 4시 반까지 우린 회의실에서 신통한 아이디어 하나 없이 시체처럼 축 쳐져 있곤 했었다. 그러다가 술집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쌩쌩해져 사랑에 빠진 맥주부인과 함께 가열찬 음주 회의를 시작한다.

그렇게 가열찬 회의를 마치고 새벽이 돼서야 집에 돌아온 난 이미 다양한 맥주부인에 취해 있게 되고 그 상태로 음주집필을 해놓고 아침 해가 훤히 떠오른 걸 확인하고는 잠이 들곤 했었다. 그렇게 양주군과 사랑에 빠진 맥주부인 덕에 집필한 대본들이 시청률 30%가 넘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사랑받고 수많은 유행어들을 낳다 못해 방송작가상까지 받게 해준 걸 보면 맥주부인의 그 사랑이 참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양주군을 사랑했던 맥주부인이 어느 날 바람이 나버렸다. 양주군 대신 소주군을 품에 안은 것이다. 그 사건은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나 버렸다. 그냥 너무 더워서 모두들 맥주나 한잔 하겠다고 호프집에 갔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양주군 없는 맥주부인은 참 김빠져 보였고 외로워 보여서 우두커니 그냥 바라보고 있는데 내 앞에 있던 소주군이 방심해 있는 맥주부인 품으로 순식간에 몸을 던졌다. 난 버럭 화를 냈다.
‘맥주부인은 이미 사랑하는 양주군이 있는데 소주군 너 미친 거 아냐?’
그런데 정작 맥주부인의 반응이 이상했다. 나보다 더 화를 내야할 맥주부인이 조용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예의 그 유혹의 몸부림을 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맥주부인의 반응에 놀란 내게 맥주부인은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은 움직이는거야!’

그렇게 기꺼이 소주군을 품은 맥주부인은 일명, 소맥으로 다시 사랑에 빠졌다. 소주군을 품은 맥주부인의 사랑은 훨씬 부드러웠다. 양주군과의 사랑이 젊은 날의 알싸한 열정이었다면 소주군과의 사랑은 부드럽지만 끈끈한 정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소주군과 바람난 맥주부인의 충격으로 나도 역시 살짝 외도를 시도했다. 코미디 작가, 대본 작가라는 내 영역에서 살짝 벗어나 쇼, 버라이어티 구성 작가에 도전해 본 것이다. 토크쇼도 해보고 퀴즈쇼도 해보고 음악쇼도 해봤다. 그 중 가장 신났던 건 음악쇼로의 외도였다.

이정현이 ‘와’라는 노래를 들고 가수로 처음 나왔던 그 해, 내가 했던 음악캠프라는 쇼프로그램에서 이정현을 쇠바구니에 태워 등장 시키다가 로프가 흔들려 위험했던 적도 있었고, 매번 클로징 무대를 장식했었던 HOT를 오프닝 무대에 세웠다가 노래가 끝난 HOT와 함께 방청객들이 다 나가버려서 썰렁한 생방송을 한 적도 있었다. 내가 코미디를 외면하고 다른 프로그램들과 외도하며 그렇게 신나있는 동안 맥주부인 또한 이젠 거칠 거 없는 바람의 달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모든 일이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부터는 용감해지기 마련이듯 맥주부인의 바람 역시 양주군을 버리고 소주군을 품을 때의 수줍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쌀쌀맞은 소주군 대신 달콤한 콜라군을 끌어 들여 ‘고진감래주’를 만들었고, 맥주부인을 못 잊어 찾아온 옛 애인 양주군의 순정도 외면한 채 복분자군을 불러들여 삼각관계를 만든 ‘삼색주’, 아예 포도 오렌지 콜라군들을 몽땅 한곳에 모은 ‘무지개주’로 모두를 현혹 시켰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고 길이 아닌 곳 끝에는 꼭 벼랑이 있기 마련이었다.
맥주부인의 마음이 진심이 아니란 걸 깨달은 그들 역시 맥주부인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진심이 아닌 그들의 마음에 상심한 맥주 부인은 모든 걸 버리고 사라져 버렸다. 맥주부인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맥주부인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질 무렵, 맥주 부인이 돌아왔다. 돌아온 맥주부인을 보고 사람들은 기대감과 함께 수군거렸다. 하지만 맥주부인은 이제 더 이상 아무도 품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냥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모두들 반신반의했다. 그 큰 열정과 욕심을 가진 맥주부인이 과연 조용히 초심으로 돌아가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투명하고 시원해 보이는 유리잔 안에 차분하게 담긴 맥주부인은 더 이상 누구를 품지 않아도 그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빛나고 가득차 보였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말했다. 맥주부인이야말로 진정한 바람의 종결자라고. 다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가장 빛나는 맥주부인이야말로 진짜 바람의 달인이라고.

      취중진담/술한잔 소설한편  |  2011. 7. 6. 18:40




전국 유일의 태교 숲길 ‘중미산자연휴양림’ 여드름 꽃이 얼굴 가득 피어올랐던 여고생 시절의 불안감은 대학에 가면 다 끝날 줄로 믿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고, 대학을 졸업해 세상에 첫 발을 내딛고도 그‘성장통’은 계속 되고 있다. 어른이 되면 다 해결될 것으로 철썩 같이 믿었던 나는 어찌해야할 줄 몰랐다. 그때마다 숲의 향기를 가슴 가득 담으러 훌쩍 떠나곤 했다. 숲은 아무런 대답을 내놓진 않지만 그 따뜻한 햇살과 초록의 나무들 이‘괜찮아. 괜찮아.’엄마처럼 포근히 안아주는 것 같았다. 7월, 여름 감기와 더불어 끙끙 앓았던 문제들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쳤다. 필사적으로 서울에서 가장 가깝다는 중미산 자연휴양림의 울창한 나무들을 찾아 길을 나섰다.

#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청정한 숲길 ‘중미산자연휴양림’

서울에서 출발해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를 지나 냉면으로 유명한 옥천을 거쳐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가 보면 중미산 자연휴양림의 표지판이 보인다. 서울에서 1시간이면 중미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하게 된다. 제1매표소에는 캠핑을 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고, 제2매표소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중미산 자연휴양림은 해발 834m의 중미산 농다치고개 너머 분지 속에 있는 침엽수림이다. 중미산 자락에 자리한 자연휴양림의 맞은편 유명산 자연휴양림은 늘 등산객으로 북적거리지만, 이곳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한때는 건강한 자연을 위해 자연휴식년제에 묶여 있어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청정하고 맑은 공기가 숲을 감싸고 있다.

중미산 자연휴양림은 1시간 30분쯤 걸리는 1.2km 숲길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한 구간이 전국 유일의 임산부를 위한 ‘태교의 숲길’이다. 스피커에서는 태아와 임산부에게 좋은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숲길 중간 마다 태교에 좋은 예쁜 시와 글귀가 적혀 있다. ‘엄마가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그리며 꿈꾼다.’, ‘태아는 완전한 인격체이다.’등 행복을 주는 생활태교의 푯말이 보인다. 이 숲길을 걸으며 자연 속에서 태교 방법을 배울 수 있고, 동그란 의자에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태아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임산부가 태아와 함께 운동할 수 있도록 너른 평상을 배치해놓은 배려도 태교를 위해 이곳에 온 부부를 기쁘게 한다.

# 자연과 벗하며 마음의 휴식을 갖는 시간

중미산 자연휴양림은 태교를 위한 숲길로 조성되었지만, 아등바등 살아가는 일상에 지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편안하고 산뜻한 공기가 스며들게 한다.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인 숲 속학교 근천에는 긴 통나무 벤치가 놓여 있다. 몸을 길게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니 햇빛에 반짝이는 순하디 순한 나뭇잎과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산책로의 반환점쯤 되는 곳에 작은 옹달샘이 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노래가 떠올라 잠시 흥얼흥얼 거려본다. 작은 동물들이 목을 축일만큼 귀여운 옹달샘이었다. 또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중간 중간 졸졸졸 시냇물이 흐른다. 양말을 벗고 차갑고 깨끗한 물에 발을 담근다. 아주 잠시지만 현실의 인간 세계를 떠나 오롯이 자연과 벗하며 산다는 상상의 사람인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비와 벌레가 너무 많았다. 함평 나비축제보다 더 많은 나비들이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숲 속을 날고 있었고, 다양한 벌레들과 부지런한 개미들이 집을 짓고 있었다. 가끔 벌레들을 보며 놀랐지만, 함께 동행한 친구는 “이 휴양림 그만큼 깨끗한 게 아닐까?

굳이 인간의 힘으로 환경을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비도 모이고, 벌레들도 저마다 집을 지으며 이 숲과 함께 공존하는 게 그 증거가 아닐까?”라고 말을 건넸다. 사실 중미산 자연휴양림에는 낙엽송, 소나무, 잣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층층나무와 고사리, 취나물, 곰취, 더덕, 약초, 버섯류가 많이 자생한다. 모든 생물들이 공존하며 모든 걸 평화롭게 만들어준다.

# 숲 체험가와 함께하는 즐거운 자연탐구생활

중미산 자연휴양림은 임산부를 위한 태교의 숲길인 동시에 가족을 위한 자연학습장이다. 숲체험가가 매일 2회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제2매표소에서 함께 출발하며 생태 공부에 도움을 준다. 숲 체험가는 묻는다.

“자연과 생태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아이들과 어른들이 머리를 맞대지만 쉽사리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자연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저절로 생겨난 산, 강, 바다, 식물, 동물 같은 존재나 그것을 이루는 지리적, 지질적 환경이에요. 또 생태란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죠.”

즉, 자연은 환경이고 생태는 조건이라고 한다. 결국 이 모든 테두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숲도 사람도 다양한 상호작용에 의해 건강할 수 있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일 만큼 쉽고 명쾌해 어린 시절 선생님과 함께 자연학습을 나온 기분이 든다. 게다가 물푸레나무엔 천연색소가 들어 있다고 한다. 직접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니 청보라의 물결이 아름답게 일었다. 자연의 신비란 이런 건가 싶어 흥미롭다. 함께 온 엄마와 아빠도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풍경을 보는 것 또한 절로 행복해진다.

숲은 인간을 치유한다. 건강치유 효능이 뛰어난 피톤치드를 내뿜는 숲은 천연의 향균 물질로 유해물질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온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다. 게다가 가파르지 않은 산자락의 산책로, 따뜻한 햇살과 초록의 나뭇잎, 선선한 바람결과 투명한 공기, 맑은 물, 흙냄새, 새의 지저귐까지 듣고 있노라면 끙끙거리던 몸과 마음에 빨간 약을 바른 것 마냥 치유되는 기분이 든다. 언제나 인간을 보듬어주는 초록의 숲에서 7월에는 힘들고 지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쉬는 건 어떨까?

글 + 사진 : 이수진 기자(자유기고가)

원문 보기 : http://webzine.hite-jinro.com/2011/07/rest/rest_1.asp?Depth1=3&Depth2=1
      행복충전/발길 따라 걷다보면  |  2011. 7. 6. 18:35




얼굴 없는 살인무기 악플러의 심리학 이지아와 서태지, 옥주현, 임태훈 등 이들은 최근 언론에 오르면서 많은 악플러 로부터 공격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사회이든 유명인에 대한 안티는 있지만 요즘은 안티를 넘어서는 악플러가 활개를 치고 있다. 유명인이든 일반인 이든 악플러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악플은 얼굴 없는 살인무기라고도 불린다.

우리 가까이에서도 악플러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 우리 신문사에 노모(22·여)씨라는 대학생이 인턴 기자로 활동 할 때였다. 그는 스포츠지 명예기자이기도 했다. 그는 최근 한 달 내내 속이 울렁거리고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쓴 기사가 인터넷과 신문에 실리자 일부 누리꾼들이 악플(악성 댓글)을 붙인 것.
‘야 ○○○, 네가 기자냐.’ ‘네가 기자면 난 대통령이다.’ ‘(역시) 이공계 출신은 글을 못 쓰는구나.’와 같은 댓글을 동일한 ID를 가진 한 사람이 무려 30개의 악플을 올렸다.
노 씨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증오심과 공포감에 시달리게 됐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삭제해 달라고 부탁한 뒤 인터넷에 접속할 정도였다.

지금도 악플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감정적인 대응 이전에 악플러의 심리는 어떤지 알아보자. 제대로 알고 난 뒤 대응하면 그만큼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

숨어 있는 열등감, 공격본능 자극

악플러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없고 심리적 열등감으로 위축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돼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마음속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면서 순간순간 긴장감과 짜릿한 느낌을 맛보려 하는 것이다.

악플러들은 주로 학생이나 무직자가 많다. 성격이 소심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독신자도 악플러가 되기 쉽다. 물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도 의외로 많다.

전문가들은 “성인 악플러는 드러나는 곳에 나서지 못하고 숨어서 감정을 배설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청소년이나 미성년자인 악플러는 사안에 대한 깊은 사고나 판단 없이 생각나는 대로 재미로 행동한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악플은 알코올 의존증이나 도박 중독과 같이 강박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악플러는 하지 말라고 하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수록 더욱 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악플러의 심리 이면에는 공격적인 본능이나 남에게 칭찬받고 싶고 남보다 잘나고 싶고 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순간적으로 짜릿한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특히 자신은 특별하므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기애적 인격 장애’인 사람들이 악플을 달기 쉽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자주 부러워하며 오만하고 건방진 태도를 지니기 쉬우며 자신의 악플로 상대방이 어떤 느낌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되도록 무시하고 잊어야 스트레스 덜 받아

악플을 당하면 길을 가다 모르는 사람한테 갑자기 욕을 먹거나 난데없이 구정물을 뒤집어쓴 느낌이 들게 된다. 악플에는 진실과 이성과 윤리와 논리가 없다. 비판과 거짓이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유명인은 악플을 보면 대중 앞에서 모욕을 당한 것이므로 심리적 충격이 있을 수 있고 자꾸 그 생각이 되풀이돼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이들은 사람마다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이 다르긴 하지만, 심하면 불안, 우울증과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일단 악플은 되도록 무시하는 게 좋다. 보았다 하더라도 미성숙한 아이나 열등한 성인의 행동으로 치부하며 애써 잊어버리려 노력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악플을 다는 사람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객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악플을 일반적인 평가라고 비약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피해자는 손상된 자신감을 만회할 수 있도록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충격이나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 약물치료 등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또 본인이 어떤 사안에 대해 댓글을 달 때, 스스로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이런 글을 하는 것이 나와 당사자 혹은 이 글을 보게 될 제 3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의 독특한 의견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그래서 작은 변화라도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좀 더 신중하게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댓글 역시 나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나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함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나의 한 부분인 댓글 역시 아무렇게나 쓰지는 못 할 것이다.

이처럼 악플 달기가 위험한 것은 알코올의존증이나 도박중독과 같이 강박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악플 달기에 빠져 본 사람들은 “끊기 힘들다”고 고백한다.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중독의 유혹은 더욱 강렬하다. 대다수 악플러는 사안에 대한 깊은 사고나 판단 없이 “그냥 재미삼아 올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심코 남긴 글 때문에 악플 당사자와 가족이 당할 심적 고통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묻고 싶다.

명예훼손 땐 캡처해 수사 의뢰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에 관한법률 44조 1항은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인해 법률상 이익이 침해된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삭제 요구 또는 반박의 글을 게재할 권리를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피해자들은 해당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악플이 계속 달리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다. 정보통신부 윤리위원회 신고상담실(02-3415-0113)을 이용하면 좋다. 심한 명예 훼손이 있는 내용이라면 악플을 캡처 해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02-393-9112)에 수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


또 법적 대응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연예인 중 고소영·김태희·비·하리수 등은 악플러에 의해 인터넷상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허위사실 유포 행위 등을 이유로 들어 고소 등 법적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인터넷에 댓글 실명제가 도입으로 피해를 봤을 경우 악플 게시자의 개인정보를 요청할 수도 있다. 또 악플 삭제 요청 시 관리자는 악플이 일정 기간 안 보이게 할 수도 있으며 악플 피해를 전담하는 정통부의 분쟁조정위원회를 활용해도 좋다.

필자소개 이진한 기자
원문 보기 : http://webzine.hite-jinro.com/2011/07/rest/rest_2.asp?Depth1=3&Depth2=2
      행복충전/이건 왜 뜰까  |  2011. 7. 6. 18:27




한국과 미국 대학생 술 문화 비교 있다, 없다!

Q.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그동안 대학생활을 하며 다양한 술 문화를 접했습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미국의 대학생들은 술을 어떻게 마시고 즐기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 다니는 양유리라고 해요. 캐나다와 미국에서 유학을 한지 벌써 11년이 되었네요. 현재 미국에서 대학교 2학년을 마쳤고요. 저는 유학생의 눈으로 봐온 한국과 미국의 문화 중 두 나라의 대학생 술 문화를 제 경험을 토대로 비교 해볼까 합니다. 역시, 미국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또는 한국에는 있지만 미국에는 없는 요소들이 많더군요.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하우스파티가 진짜?

먼저 미국 대학생들과 한국 대학생들이 술을 즐기는 장소와 방식이 정말 다릅니다. 미국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술을 마시는 장소는 학생들이 주최하는 하우스파티입니다. 학교 내에 남녀가 따로 속한 프랫터니티(Fraternity)와 소로리티 (Sorority)라고 불리는 여러 단체가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말 그대로 ‘형제들의 사회’, ‘자매들의 사회’이죠. 이 단체들은 학기 중 바쁘지 않은 시기에 거의 매 주말마다 캠퍼스 내에 위치한 프랫 하우스 (Frat House), 소로리티 하우스 (Sorority House)에서, 또는 캠퍼스 밖에 있는 클럽을 빌려 대학동료들을 초대해 클럽 형식의 파티를 엽니다. 한국과 달리 만 21살 미만의 대학생들(대학교 1,2,3학년)은 남녀 상관 없이 술집, 클럽 출입이 금지 되어있기 때문에 이렇게 학생들이 주체하는 파티 외에는 술을 마시고 춤을 출 기회가 없습니다. 미국 드라마 속 흔히 나오는 미친듯한 하우스 파티가 현실인 거죠. 파티에 나오는 모든 술과 음식은 파티를 주체하는 학생 단체가 전부 제공하며 참석하는 학생들은 따로 술을 사지 않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공짜야? 입장료도 없어?”라는 저의 질문에 파티에 자주 다녀본 제 친구는 “입장료 같은 것을 왜 내냐”며 저를 마치 외계인처럼 쳐다봤죠. 반면 한국의 대학생 술 문화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은 술집과 계산서입니다. 한국 대학생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수다 또는 술 게임을 하며 마냥 시간 보내기를 좋아합니다. 집에 갈 때쯤 항상 “누가 돈을 내느냐”하는 질문에 ‘더치페이’를 하기로 하거나 또는 누군가 ”쏜다”를 외치며 그날의 영웅이 되곤 하죠. 술에 돈을 누가 얼마만큼 쓰느냐 하는 걱정을 미국 학생들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정신 없이 춤을 추기 바빠 돈을 내야 하는 걱정 하나 없이 취하기 위해 마음껏 술을 마십니다. 공짜 술에 그냥 그렇게 미치고는 다음날에는 기억이 지워진 채 잠에서 깨고는 합니다.

하우스파티

한국에는 없는‘프리 드링킹’

이러한 파티 문화에 미국 대학생들에게는 술을 마시는 목적은 오로지 하나, 최대한 많이 취하고 정신을 마음껏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겐 한국 대학생들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프리 드링킹’(pre-drinking) 이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파티에 가자마자 더욱 미치도록 춤추고 정신을 놓기 위해 가기 전에 미리 모여 몰래 술을 마시고 취해 놓는 것입니다. 그것도 조금만 마시고 빨리 취하기 위해 센 양주 위주로 마시곤 하죠. 한국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문화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어차피 술집에 가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타 여러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수다와 게임으로 즐겁게 친목을 다질 수 있을 텐데, 집에서 먼저 미리 취해버린다면 재미없는 외톨이가 되겠죠.

미국에는 없는‘해장’과‘안주’

필라델피아 한인타운에 있는 한국술집에서 참이슬을 마시는 한국 유학생들

한국 대학생들은 미국의 이러한 몇몇 술 문화를 모르는 반면 미국 대학생들이 알 수 없는 독특한 술 문화를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술 문화 하면 첫 번째 떠오르는 것은 해장국. ‘해장’ 이라는 개념을 아예 모르는 미국인들은 술 마신 다음날 아침 답답한 속을 얼큰한 국물로 시원하게 내려 보내는 그 느낌을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미국 술 보다는 한국 술을 더 선호하는 저는 가끔 동료 한국 유학생들과 한국 술을 마시곤 합니다. 같이 술자리를 한 친구들은 그 다음날 아침에 또 보게 돼있죠. 서로 “잘 잤느냐” 혹은 “괜찮으냐”라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만나서 다 함께 근처 한국 음식점에 가서 해장하곤 합니다.

북엇국, 육개장, 부대찌개, 매운탕, 라면 등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 돌게 하는 얼큰한 해장국. 제가 신입생 때 같이 방을 썼던 미국인 룸메이트는 그 맛을 평생 모를 겁니다.

신입생 때 한번은 룸메이트가 술에 잔뜩 취해 토를 하고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방에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많이 아픈가 하고 걱정했었는데 다음날 오후까지 한참 자고 일어나더니 멀쩡한 모습으로 샌드위치를 사오더라고요. 약이라도 줄까 했던 생각이 사라질 정도로 너무 멀쩡해 보였습니다. 더 놀라웠던 건 그 속에 샌드위치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도 제가 술을 마신 후 이상한 맵고 빨간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모습을 보면 아마 같은 생각을 하겠죠?

미국 대학생들은 해장을 위한 특별한 음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실 때 같이 먹는 안주 또한 특별히 없습니다. 한국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술을 못 마셔도 안주 맛에 술집에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학생들은 편하게 서로 얘기하기 바빠 맥주를 마실 때는 아무런 음식을 같이 먹지 않습니다. 파티 같은 경우에는 피자와 칩 외에 음식은 거의 나오지 않죠. 어차피 그곳에서는 빨리 취하는 게 주 목적이니까요. 술을 마시는 도중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는다 해도 햄버거나 피자 외에 별다른 음식을 찾지 않습니다. 새벽에 맥도날드에 가보면 쓰린 빈 속을 안고 온 술에 취한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맥도날드 햄버거는 아는데 오뎅탕은 모르다니……

한국에만 있는 술자리 예의

한국 대학생들의 술자리 하면 또 빼 놓을 수 없는 술자리 예의범절 역시 미국 학생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선후배 간의 관계를 상당히 중요시 여기기에 술자리에서도 선배 앞에서는 꼭 지켜야 하는 예의가 있습니다. 술을 따르는 순서도 서열 상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부터 따르고 후배들은 선배 앞에선 꼭 두 손으로 잔을 받아야 하죠. 미국 학생들은 ‘선후배’라기 보단 모두가 그냥 ‘동료’이기 때문에 술잔을 드는 순간 나이와 상관 없이 모두 친구가 됩니다. 특히 파티 같은 경우에는 신나는 분위기를 타 초면에 마치 이미 알던 사이처럼 말도 쉽게 걸고 툭툭 치며 장난도 치고는 하죠. 서로의 문화를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 학생과 미국 학생이 술자리를 같이 한다면 아마 싸움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래방 문화

한국만의 고유한 노래방 문화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는 술자리 이후에는 노래방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에는 안타깝게도 노래방이 없습니다. 술을 마시고 자신이 어떤 가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이죠. 신나는 리듬을 타 노래를 부르며 구경하는 모든 동료 선후배를 즐겁게 해줄 수도 없고, 또 어느 가수를 패러디하며 모두를 웃겨 줄 수도 없습니다. 미국 학생들에게는 “술을 마시고 논다”하면 무조건 취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춤을 추는 것이죠.

한번은 이랬습니다. 과제에 묻혀서 캠퍼스 안에 한동안 갇혀 살던 저는 어느 날 오랜만에 한국 유학생 친구들과 한국 술집에 가서 여자들만의 수다 타임을 가지려 했습니다. 저희가 간 작은 술집은 조금 특이하게도 술을 마시며 모든 사람이 노래도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마이크는 두 개이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다른 일행도 자신의 노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곡을 나름 잘 부르도록 노력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날 그 술집은 평소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한국 친구들을 따라 한국 술을 마시러 온 미국인 일행이 크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노래를 부르기는커녕 복도에 나와 정신 없이 춤을 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인 술집에 미국인들이 오니 술집이 클럽으로 둔갑하더군요. 저는 그 광경을 보며 짜증이 나면서 “아니 내가 모처럼 친구들과 재미있게 수다 좀 떨어 보겠다는 데 왜 여기서 춤을 춰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날만큼은 한국식의 술자리를 갖고 싶었던 저와 제 친구들은 결국 그곳에서 나와 다른 술집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미국에 있지만 뼈 속은 한국인

술은 한국이던 미국이던 대학생 사회에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두 술 문화의 아주 큰 공통점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공부 외에 꼭 필요한 사회 생활을 경험해 보는 데에는 술이 빠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미국 대학생이 파티 문화가 없는 한국 대학에 온다면 이상하기도 하고 몸이 간지러워 답답할 것 같습니다. 타고난 성향일까요? 해장국, 안주, 노래방 등이 없는 미국 대학 술 문화를 답답해 하는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봅니다.

원문 보기 : http://webzine.hite-jinro.com/2011/07/sweet/sweet_1.asp?Depth1=4&Depth2=1

      척척박사/무엇이든 물어보세요  |  2011. 7. 6. 18:22




즐겨찾기와 함께하는 신선함을 담은 7월의 안주! 오징어미더덕찜 VS 파닭샐러드 뜨거운 7월이 되면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생깁니다. 여름을 맞이해 MT를 가거나 여름 여행계획을 세우며 두근두근 거리게 되요. 그런 설렘과 함께하는 건 바로‘차가운 소주’겠죠?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는 차가운 소주. 그 소주에 어울리는 맛있는 여름 안주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징어미더덕찜

장마철이 시작되는 7월이면 매콤한 오징어미더덕찜과 함께 가벼운 소주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요. 특히 바다향이 나는 오징어와 미더덕이 듬뿍 들어가고 코끝을 자극하는 미나리의 향긋함이 베여있고 쫄깃한 떡이 들어가 별미 안주가 되는 ‘오징어미더덕찜’. 여름 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미더덕을 톡 터트려먹으며 즐거운 안주로 먹기에 안성맞춤이랍니다.

재료

오징어(2마리), 미더덕(1줌), 떡(1줌), 콩나물(3줌), 미나리(1줌), 대파(1/2대), 청양고추(1개), 붉은 고추(1/2개)

양념장

+ 양념장 : 물(1/3컵), 고추장(3TS), 고춧가루(2TS), 맛술(1TS), 간장(2TS), 물엿(1TS), 다진 마늘(1TS), 다진 파(1TS), 후춧가루 약간
+ 녹말물 : 녹말(1.5TS), 물(3TS)

만드는방법

1. 오징어는 칼집을 넣어 채 썰고, 미더덕은 흐르는 물에 씻은 뒤 이쑤시개로 두 번 찔러 준비합니다.
2.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오징어, 미더덕을 넣어 볶습니다.
3. 오징어가 반 정도 익으면 떡을 넣어 함께 볶아준다.
4. 깨끗하게 씻은 콩나물과 분량의 양념장을 잘 섞어 함께 넣고 중간 불에서 익힙니다.
5. 재료가 완전히 익고 국물이 끓으면 미나리, 송송 썬 대파, 청양고추, 붉은 고추를 넣어 볶습니다.
6. 녹말물을 빙 둘러 뿌리고 재빨리 섞어주면 완성됩니다.

만드는방법

파와 닭의 신선한 만남 파닭샐러드

요즘 파닭치킨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안주로 먹기에 그 푸짐한 양과 살 찌는 게 걱정 되서 먹기 망설여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칼로리도 낮추고 영양까지 챙기는 1석 2조의 ‘파닭샐러드’를 추천해드려요. 알싸한 대파와 아삭거리는 야채, 바삭하고 고소한 닭의 만남에 젓가락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파닭샐러드에 소주 한 잔 어때요?

재료

닭 가슴살(2개), 파(1대), 양상추(3장), 치커리(5장), 무순(1줌), 풋고추(1개), 붉은 고추(1/2개), 계란(1개), 밀가루(1/2컵), 빵가루(1/2컵), 파마산 치즈가루(2TS)

양념장

+ 닭 가슴살 밑간 양념 : 맛술(4TS), 생강가루(0.5ts), 후춧가루 약간 + 드레싱 : 간장(2TS), 설탕(1TS), 식초(1.5TS), 참기름(1TS), 다진 풋고추(0.5TS), 다진 붉은 고추(0.5TS), 참깨 약간

만드는방법

1. 닭 가슴살은 세로로 칼집을 넣어 2등분 한 뒤에 분량의 밑간 양념을 골고루 뿌려 20분간 재웁니다.
2. 달걀을 잘 풀어 닭 가슴살을 담갔다가, 밀가루, 빵가루, 파마산 치즈가루를 섞은 것에 넣어 앞뒤로 골고루 튀김옷을 입힙니다.
3. 달군 기름에 2를 넣고 앞뒤로 노릇하게 튀겨냅니다.
4. 튀겨낸 닭 가슴살은 키친타월 위에서 기름기를 뺀 뒤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썹니다.
5. 파는 가늘게 채 썰어 찬물에 30분 이상 담가 아린 맛을 빼고, 준비한 야채들은 모두 흐르는 물에 씻은 뒤 체에 밭쳐 물기를 뺍니다.
6. 접시에 양상추, 치커리, 무순 등 준비한 야채를 깔고, 닭 가슴살을 올린 뒤 송송 썬 붉은 고추와 풋고추, 채 썬 파를 올린 뒤 분량의 드레싱을 뿌려주면 완성됩니다.

만드는방법
제품소개:즐겨찾기
파워블로거 김민희

원문 보기 : http://webzine.hite-jinro.com/2011/07/sweet/sweet_2.asp?Depth1=4&Depth2=2
      척척박사/파워블로거의 안주 자랑  |  2011. 7. 6. 18:15




      기쁨나눔/신나는 카툰 세상  |  2011. 7. 6. 18:12




김건모ㆍ윤도현ㆍ정엽, 참이슬송 대결 김건모ㆍ윤도현ㆍ정엽 등 3명의 가수들이 '참이슬송' 서바이벌 대결을 펼친다. 진로가 6월 15일부터 새롭게 선보인 참이슬 광고는 최근의 핫 트렌드인 '오디션 열풍'에 맞춰 서바이벌 형식으로 제작됐으며 김건모, 윤도현, 정엽은 '참이슬송'을 각각 음악스타일을 살려 발라드, 락, 보사노바 버전으로 편곡해 부르면서 참이슬 모델 이민정과 술 한 잔 더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콘셉트로 선보인다. 이번 광고는 극장, 지하철, 모바일 등을 통해 볼 수 있으며, 각 가수별 전곡 버전은 참이슬 홈페이지(www.chamisulfresh.com)를 통해 들을 수 있다. 또한 6월 16일부터 한달간 네티즌의 투표로 이들의 순위를 가리는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가수별 곡 듣기 및 이벤트 참여하기

김건모ㆍ윤도현ㆍ정엽, 참이슬송 대결 김건모ㆍ윤도현ㆍ정엽 등 3명의 가수들이 '참이슬송' 서바이벌 대결을 펼친다. 진로가 6월 15일부터 새롭게 선보인 참이슬 광고는 최근의 핫 트렌드인 '오디션 열풍'에 맞춰 서바이벌 형식으로 제작됐으며 김건모, 윤도현, 정엽은 '참이슬송'을 각각 음악스타일을 살려 발라드, 락, 보사노바 버전으로 편곡해 부르면서 참이슬 모델 이민정과 술 한 잔 더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콘셉트로 선보인다. 이번 광고는 극장, 지하철, 모바일 등을 통해 볼 수 있으며, 각 가수별 전곡 버전은 참이슬 홈페이지(www.chamisulfresh.com)를 통해 들을 수 있다. 또한 6월 16일부터 한달간 네티즌의 투표로 이들의 순위를 가리는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하이트, ‘맥스 스페셜 호프 2011’ 출시

하이트, ‘맥스 스페셜 호프 2011’ 출시

하이트맥주는 100% 보리맥주 ‘맥스’(Max)의 한정판 맥주인 ‘맥스 스페셜 호프 2011’을 7월 4일 출시했다. ‘맥스 스페셜 호프’는 출시 때마다 새롭고 다양한 호프를 사용해 큰 인기를 끌어왔다. 이번 ‘맥스 스페셜 호프 2011’은 세 번째 한정판으로 뉴질랜드의 깨끗한 자연에서 재배된 햇 호프를 사용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뉴질랜드 호프는 전 세계 호프 생산량의 1% 미만을 차지하고 있는 희귀한 호프다. 특히 뉴질랜드 호프 중에서도 극소량만 수확되는 ‘라카우’ 호프(전 세계 호프 생산량 중 0.001% 차지)를 사용했다. 라카우 호프는 오염 되지 않은 청정 지역에서 재배되고 과일 향을 지니고 있다. ‘맥스 스페셜 호프 2011’은 355ml 캔과 1600ml 페트가 출시되며, 가격은 기존 맥스 맥주와 동일한 가격이다. 또한 맥스 스페셜 호프 생맥주도 함께 출시한다.




국내 최대 규모 사회인야구대회‘하이트볼’개막

국내 최대 규모 사회인야구대회‘하이트볼’개막

국내 최대 규모의 사회인야구대회 ‘2011 하이트볼 챔피언십’이 8월 6일부터 9월 25일까지 개최된다. 하이트맥주가 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전용연습장에서 열리며, 상금도 일반 사회인야구대회보다 3배 가량 많은 총 3460만원이 걸려있다.
2부 60팀, 3부 64팀 등 총 124팀이 참가하고 3부 리그 최종 상위 4개 팀은 2부 리그 토너먼트 진출 기회를 갖는다. 대회 참가를 원하는 팀은 7월 1일부터 20일까지 대회 공식 홈페이지(www.hiteball.com)에서 신청하면 된다.




킹덤ㆍ석수 국제대회 수상기념 이벤트

킹덤ㆍ석수 국제대회 수상기념 이벤트

하이스코트가 16억원 상당의 경품을 증정하는 ‘굿 초이스 킹덤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번 이벤트는 2011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SWSC)에서 킹덤의 전제품이 수상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다. 하이스코트는 9월 말까지 전국에 있는 1000여개 업장에서 킹덤을 소비한 이들에게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스크래치 카드를 증정한다.
또한 석수와퓨리스는 국내 최초로 벨기에 주류 식품경연대회인 ‘2011 몽드셀렉션’에서 음료부문 금상(Gold)을 3년 연속 수상한 것을 기념해 6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2달간 ‘2011 금상수상 기념 행운 이벤트’를 진행한다.




하이트진로 스포츠 선수단, 종횡무진 활약

하이트진로 스포츠 선수단, 종횡무진 활약

하이트맥주 양궁단 서정희 선수가 6월 15일 울산 문수국제양궁장에서 열린 ‘2011 양궁 컴파운드 2차 대회’에서 4관왕에 올랐다. 여자 일반부 결선에서 30m(359점), 50m(348점), 70m(339점) 세 개의 금메달을 차지한 데 이어 개인종합에서도 총점 1391점으로 개인종합 1위의 영광을 안았다. 이 날 함께 열린 28회 회장기 전국 대학·실업양궁대회에서 신은정 선수가 60m 종목 은메달과 개인종합 동메달을 추가했다.
또 하이트진로그룹 바둑팀은 6월 17일 서울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KB국민은행 2011 한국바둑리그’ 3라운드에서 넷마블을 상대로 4-1 대승을 거두며 포스코 LED, 영남일보와 함께 공동선두에 올랐다.




하이트ㆍ진로 대구지점, 불우이웃돕기 성금

하이트ㆍ진로 대구지점, 불우이웃돕기 성금

하이트맥주 대구지점과 진로 대구지점은 6월 13일 매일신문사를 방문해 불우이웃돕기 기금 5200만원을 전달했다. 하이트맥주는 2007년부터 이웃사랑코너에 성금을 기부했으며, 2009년부터 진로도 함께 동참하고 있다. 한편 하이트맥주와 진로 원주지점은 6월 10일 강원도 원주시와 ‘시민서로돕기 천사운동’ 협약식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2011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3년간 12분기에 걸쳐 분기별로 1004만원씩 총 1억 2048만원을 후원한다.

원문 보기 : http://webzine.hite-jinro.com/2011/07/enjoy/enjoy_6.asp?Depth1=5&Depth2=6

      기쁨나눔/소식을 알려줘  |  2011. 7. 6. 18:06




      기쁨나눔/이벤트  |  2011. 7. 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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