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해안길은 최치원의 전설이 서린 동백섬을 한 바퀴 돌아 3개의 포구를 걷는 해안길이다. 대구탕과 횟집으로 유명한 해운대 미포, 조개구이집이 많은 청사포, 송정해수욕장이 있는 구덕포 세포구를 연결 지어 삼포라고 한다.
처음 시작점은 동백섬이었다. 조선호텔 뒤에 위치한 동백섬은 해운대를 바라보며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동백섬은 해운대 해수욕장 남쪽 끝에 자리한 섬이었지만 장산폭포에서 흘러내린 물과 부흥동에서 흘러내린 물이 해운대 지역의 모래를 실어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육지와 이어지게 되었다.
가수 조용필의 노래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마안~’처럼 3~4월에 빨간 동백꽃이 절정을 이루고, 여름에는 초록빛으로 물든다.
6월의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끝없이 펼쳐진 동해 바다를 보고 걷고 싶었지만, 머피의 법칙은 나를 지나쳐 가지 않았다. 흐릿한 하늘과 자욱한 안개로 바다가 덮여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산책로를 걷다보니 순환길 옆 암반지대에 황옥공주라는 청동인어상이 슬프게 앉아 있었다. 덴마크에 인어공주가 있다면 한국엔 황옥공주가 있다고 한다.
해운대를 지나 동양의 몽마르트 언덕으로 불리는 달맞이 길의 맨 아랫부분에 자리한 미포를 만난다. 미포는 소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와우산의 맨 아래에 있어 꼬리 ‘미(尾)’를 써서 미포라고 불린다. 미포를 지나 달맞이 길로 올라가니 ‘문탠로드’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특히 미포에서 청사포, 구덕포로 가는 길목을 이어주는 ‘문탠로드’는 삼포해안길을 대표하는 길이다.
문탠로드의 문탠(moomtan)은 선탠(suntan)이란 말을 뒤집어 달빛을 받는다는 표현과 길의 영문 발음을 합친 합성어다. 즉, 달빛을 받으며 걷는 길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일몰부터 밤 11시까지, 새벽 5시부터 일출까지 조명이 들어와 아름다운 숲속 길을 연출해준다.
더불어 문탠로드는 해운대구 직원들이 월급끝전을 기부하여 ‘새가 노래하는 정겨운 길’을 조성하고자 팔손이나무를 길 양옆에 식수한 나눔의 길이다. 그들의 나눔으로 사람들은 초록빛 숲을 거닐고, 바다내음을 맡고,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자분자분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걷다보니 바다 쪽으로 철길이 보인다. 이 철길은 동해남부선 해안철도로 1918년 18월 31일에 첫 운행을 시작해 부산과 포항을 연결한다. 현재 복선전철화 사업이 진행 중에 있어 해운대-송정 구간 이설이 완료되면 아름다운 해안절경으로 유명한 이 구간을 통과하던 열차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길의 중간쯤 갔을 때 청사포와 구덕포의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까지 온 이상 청사포 마을로 들어가 바다도 보고 조개구이도 보며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청사포 마을을 보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구덕포로 가기로 결정했다. 청사포로 내려가기 위해 동해남부선 건널목을 건너내려 가면 수많은 조개구이 집과 바다에 정착된 배,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가 마주보고 서 있다. 시계를 보니 5시. 기온차로 생긴 안개가 점점 사라지고 파란 바다가 얼굴을 드러낸다. 안개 낀 풍경도 좋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안개가 사라지자 아이처럼 기뻤다. 멀리까지 왔는데 바다를 눈에 담아갈 수 있어 진심으로 안도했다. 청사포는 난류와 한류가 섞이는 동해의 남쪽 끝, 남해의 동쪽 끝에 있어, 옛날부터 물고기가 풍부하고 질 좋은 횟감이 많이 잡혔다. 그런 탓에 포구의 방파제는 늘 낚시꾼들로 붐비고 주변엔 횟집과 조개구이 촌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쇠락하지 않은 생동감 있는 어촌마을의 풍경이 즐겁다. 전복과 가리비, 새우 등이 풍성한 조개구이를 먹고 갈림길로 되돌아 갔다.
구덕포로 향하는 길 귀신처럼 음침한 사스레피나무가 쭉 늘어서 있었다. 사스레피나무는 차나무과의 상록활엽관목으로 3~4월에 피는 꽃에서 계분 냄새가 난다. 유쾌하지 않은 냄새지만 사람에게는 살균, 진정작용하며 공기청정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옅게 남아있는 계분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동해남부선 철길의 굴다리를 지나니 구덕포가 나왔다. 해안 길에서 물이 빠진 갯바위에서 고동을 잡는 아이들과 엄마, 낚시를 하는 아빠로 보이는 가족들이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해안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멀리 송정해수욕장의 백사장이 보였다. 백사장에는 뜨거운 여름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아직은 차가운 바닷물에 풍덩 뛰어든 개구쟁이 꼬마들과 가족들, 다정한 연인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여름의 길목에 들어서는 뜨거운 6월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선물해주는 것 같다. 길고 긴 삼포해안길의 목적지에 출발 5시간 만에 도달한 나 역시 행복한 웃음이 절로 난다. 송정해수욕장의 죽도공원까지 천천히 걸어가서 해가 뉘엿뉘엿 지는 일몰을 바라보는 것으로써 삼포해안길의 긴 여정이 끝났다.
오랜만에 새소리 들리는 청량한 소나무 산길과 자욱한 안개 속에서 들리던 파도소리 함께한 해안가를 걸으며 ‘부산’과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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