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가끔 그 작은 마을이 그리워 찾아갔지만 낯선 아파트와 복합 상가가 우뚝 서 있어 씁쓸한 미소를 짓고 돌아올 뿐이었다. 아마 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이런 기억은 흔한 기억일 것이다. 모두들 반짝이는 높은 빌딩과 편리한 아파트를 꿈꾸게 되면서 작은 마을이 서야할 자리는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옷을 입히기보다 조금 낡아도 그대로 보존하며 추억과 꿈을 선물해주는 마을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중 하나인 통영의 ‘동피랑 마을’로 아련한 추억을 더듬으며 찾아갔다.
서울에서 4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통영. 두 번째 방문이다. 처음 통영을 찾았을 때 함께 동행 했던 사람이 ‘여기가 바로 한국의 나폴리 통영이야’라고 말했다. 통영의 중앙시장 앞의 작은 항구와 나폴리라는 모텔을 보면서 피씩 웃었던 기억이 살며시 떠오른다. 동피랑 마을은 통영의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위치해 있는 마을로,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알록달록한 마을이 보인다. ‘동쪽 벼랑’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동피랑 마을은 ‘동쪽에 있는 비탈’이란 뜻의 통영사투리이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소라껍데기처럼 생겼다고 한다. 사실 이 마을은 조선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로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해 동포루를 복원하고 그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2007년 마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 미술대학의 학생과 개인 등 19개 팀이 낡은 담벼락마다 형형색색의 벽화를 그렸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 최초의 벽화 마을이 탄생하게 되었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 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고,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통영시는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의 집 3채만 헐고 마을 철거방침을 철회했을 뿐 23가구 50여명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터전을 굳건히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마을을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과 참신한 아이디어, 그리고 고사리 같은 미술학도들의 작은 손이 모여 가장 예쁜 벽화마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동피랑 마을은 빠른 발걸음 대신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걸어야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 구수한 ‘퍼뜩 오시소’라는 인사로 정겹게 사람을 맞이하는 벽화를 시작으로 동피랑 마을의 걷기 여행은 시작된다. 어느 집 담벼락에는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그려져 있고, 또 다른 벽화에는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사막여우와 보아뱀이 동화의 한 장면과 함께 ‘우리가 행복한 것은 마음에 심어둔 한 송이 장미가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숨박꼭질 하는 추억의 한 장면도 있어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온다. 더불어 초록의 지붕 아래에는 통영을 대표하는 윤이상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어 그들에 대한 존경과 마음을 담기도 했다.
마을 어귀의 ‘동피랑 마을 구판장’에 서면 강구안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과거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이곳은 과거 고깃배가 들어올 시간이 되면 마을 아낙들이 구판장에 앉아 고기 잡으러 나간 남편과 가족을 기다렸다고 한다. 누군가 죽거나 다치면 배에 흰 깃발이 매달렸는데, 흰 깃발이 바다 저편에서 보이면 거친 언덕을 눈물과 함께 한 걸음에 내려가기도 하고, 깃발이 달리지 않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이처럼 구판장에는 뱃사람으로서의 삶의 애환이 담겨있다. 구판장을 지나 골목 사이를 걸어간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모퉁이는 길이 이어진 듯 또 다시 새로운 길이 시작되어 보물찾기하듯 벽화를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또한 마을 정상에서 바라보는 통영 앞바다의 전경과 건넛마을의 풍경이 아름다워 ‘와아’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통영을 바라본다. 해와 달과 가깝고, 바다가 보이는 동피랑 마을의 구석구석을 돌다보면 참 정겹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린 시절을 지낸 작은 마을이 사라졌을 때 느꼈던 추억에 대한 박탈감과 그리움이 채워지는 것 같다.
동피랑 마을을 발길 따라 닿는 대로 걸으며 나는 참 행복했다. 동화 속 마을에서 꿈을 꾸고 있는 기분에 잠겼다. 마을 안의 한 글귀를 보고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무십아라! 사진기 매고 오모 다가, 와 넘우집 밴소깐꺼지 디리대고 그라노? 내사 마, 여름내도록 할딱 벗고 살다가 요새는 사진기 무섭아서 껍닥도 몬벗고. 고마 덥어 죽는 줄 알았능기라.’ (무서워라. 사진기 메고 오면 다예요? 왜 남의 집 변소까지 들여다보고 그래요? 나는 여름내 옷을 벗고 살다가 사진기 무서워서 옷도 못 벗고 그냥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햇빛을 쬐며 마당에 나와 있고 싶어도, 문을 열어 집안을 환기 시키고 싶어도, 일요일 오후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마을 곳곳에 빼곡히 주차된 차들과 큰 경적 소리와 수많은 관광객들의 카메라 셔터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까지. 마을을 살린 이유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큰 불편함이 된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여행객으로서의 살아가는 주민들을 위해 매너와 예의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중앙시장에서 5분 거리에 있으니 차는 되도록 가지고 갈지 말고 동피랑 마을의 집안을 기웃거리거나 큰소리로 떠드는 등의 행동도 삼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길 바라본다.
동피랑은 누군가의 마을이 아닌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생명을 불어 넣어 준 우리의 마을이다. 하늘과 파도와 바람 그리고 사랑이 담벼락이 머무는 그곳, 동피랑 마을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사람이 함께하는 고향 같은 풍경이 지속되길 바라며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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